## 검찰총장의 '박정희 체포 건의' ##.
토요일인 5월13일, 혁명주체 장교들은 저마다 점검과 확인으로 바
빴다. 부산의 군수기지사령부 참모장 김용순 준장은 작전참모와 본부
사령을 불러 거사 계획을 털어놓고는 "혁명방송이 나가면 본부를 장
악하라"고 지시했다. 1군사령부의 이종근(국회의원 역임) 중령은 서
울로 올라와서 유승원 대령을 만났다. 유 대령은 "2∼3일 안으로 거
사할 것이고 인편으로 알려줄 것이니 밤차로 귀대하여 대기하라"고
말했다. 대구 2군사령부에서 이주일 참모장은 논산훈련소 최홍희 소
장에게 전화를 걸어 "한 대령을 내일 중에 대구로 보내 달라"고 했
다. 최홍희는 일찍부터 혁명주체세력으로 포섭되어 있었다.
박정희 소장의 쿠데타 모의를 확인하여 구속수사를 건의했던 이태희 검찰총장.
박치옥 공수단장도 김제민 대대장과 차지철 대위 등 중대장들을
불러 거사일이 임박했다고 통보하고 정부요인 체포계획을 알려주었
다. 해병대도 이날 김동하 장군 집에서 회의를 했다. 김윤근 해병여
단장과 출동 대대장 오정근 중령을 부른 김동하 장군은 거사 날짜가
16일로 확정되었음을 통보했다. 이날 2군사령부에선 이주일 참모장이
바빴다. 이원엽 육군항공학교장이 광주에서 날아왔다. 이주일은 박정
희가 써놓고 간 편지를 이 대령에게 건넸다. 펴보니 '조국의 장래와
민족의 운명을 건 이 유신대업에 동참하고 수일 후 서울에서 감격의
악수를 나누자'고 적혀 있었다.
5월13일 저녁, 서울 옥인동의 '백양'이란 요정에 장도영 육군참모
총장, 민주당 김재순(국회의장 역임) 의원, 선우종원 조폐공사 사장,
송원영 총리 공보비서관이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다. 송원영의 기억
에 따르면 김재순은 단도직입으로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박정희라는 소장의 쿠데타 음모설이 있는데 참모총장은 총리께
보고했는 지요?"
"오늘 낮에 총리께 보고드렸습니다. 박정희 소장은 나의 꼬붕입니
다. 형님, 참모총장을 못 믿겠습니까?"
"하긴, 참모총장을 못 믿고 누굴 믿겠소? 옛날 신하는 군주에게
충성했지만 현재의 군인은 헌법에 충성해야 하지 않겠소. 합헌적 정
부를 전복하려는 쿠데타 기도를 총장이 책임지고 분쇄해야 합니다.".
송원영이 보니 장도영은 매우 당황한 듯 보였다고 한다. 그날 따
라 장도영은 무슨 고민이 있는 얼굴을 하고 술도 많이 마시지 않았다
는 것이다. 장도영은 방바닥에 벌렁 눕더니 "형님, 정말 못해 먹갔어
요"라고 했다. 송원영은 1주일쯤 전에 윤병한 의원으로부터 들은 김
덕승건을 상기시켰다. 장도영은 "그에 관해선 총리로부터 이미 이야
기를 들었는데 대수롭지 않은 사건이다"라고 하더란 것이다. 이들은
이날 일찍 자리를 떴다.
장도영 총장이 "어디 갈 데가 있다"면서 총총히 일어서 나갔기 때
문이다.
장도영은 선우종원에게 "내일 골프나 칩시다"라고 했는데 선우종
원은 거절했다.
장도영은 장면 총리의 '박정희 쿠데타 기도설에 대한 조사 지시'
에 대하여 "낭설이다"라고 보고했으나 같은 지시를 받은 검찰은 제대
로 수사를 하고 있었다. 이태희 검찰총장은 서울지검 김홍수(뒤에 대
한 변호사협회 회장) 부장검사에게 수사를 맡겼다. 김 부장은 박정희
로부터 5백만 환의 거사자금을 마련하도록 부탁받았던 김덕승에게 미
행을 붙였다. 김홍수에 따르면 김덕승이 박정희 집에 출입하는 것도
확인했다고 한다. 검찰은 5월12일 오전에 김덕승을 체포했다. 김홍수
는 김덕승이 조사를 받고 있던 남대문 근처의 한 호텔로 가서 김을
만났다. '5·16혁명실기'에는 김덕승이 수사관의 문초를 받고도 끝까
지 비밀을 지켰다고 적혀 있으나, 김홍수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죄다
털어놓았다고 한다. 김홍수는 내란음모죄로 그를 구속하면 사회에 너
무 큰충격을 줄 것 같아서 우선 사기미수 혐의로 구속했다. 그리고는
이태희 검찰총장을 찾아갔다. 김홍수는 '박정희 쿠데타 음모설은 사
실로 판명되었다'고 보고했다.
"이 총장은 보고를 듣더니 '내가 이미 아무 일도 아니라고 장면
총리에게 보고했다'고 합디다. 저는 '아닙니다. 이번만은 틀림이 없
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나를 앉으라고 하더니 이 총장은 장도영 총장
한테 전화를 걸더군요. 이 총장은 장도영에게 '검찰에서 수집한 정보
에 따르면 박정희 소장이 쿠데타 모의를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고
말했어요. 그렇게 한 15분쯤 앉아 있는데 장도영한테서 전화가 왔습
니다. 장도영은 이 총장에게 대략 이런말을 한 것 같습니다. '내가
대구의 박정희 소장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는데 전혀 그런 뜻이
없다고 합니다'. 이 광경을 보면서 저는 이 총장과 장 총장이 쿠데타
모의문제를 신중하지 않게 다루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김홍수 부장검사는 13일엔 경찰로부터 결정적인 정보를 입수했다.
경찰에서 군 부대 사이의 전화를 감청하고 있었는데 부대의 움직임이
쿠데타를 준비하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한다고 보고하는 것이었다.김
홍수는 이 정보를 가지고 이태희 총장실로 달려갔다. 이태희 총장은
김 부장의 보고를 받더니 얼굴이 확 붉어지더라고 한다. 이 총장은
장면 총리가 머물던 반도호텔로 달려갔다. 총장의 긴급보고를 들은
총리는 장도영을 불러들였다. 이태희 변호사의 기억에 따르면 장도영
은 손을 저으면서 "내가 알아보았는데 군에는 별일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더란 것이다. 이태희 총장은 "나는 군에 관련된 권한이 없으니까
당신이 조치하시오"라고 말했다고 한다.
육군방첩부대 산하 506서울지구대장 이희영의 증언에 따르면 이날
저녁 506방첩대장실에서 '박정희-이철희 체포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회의가 열렸다. 이철희 방첩부대장, 이희영 대령, 그리고 이태희 검
찰총장이 참석했다고 한다. 이태희 총장은 그간의 수사결과를 설명하
면서 "박정희는 지금 서울에 올라와 있는 모양이니 빨리 잡으시오"라
고 재촉했다. 이희영은 "장성 체포는 참모총장의 내락을 받아야만 가
능합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철희-이희영 두 사람은 이날 밤
참모총장 공관으로 장도영을 찾아갔다는 것이다. 이태희 총장의 구속
요구를 전달하자 장도영은 "좀더 두고 봐"라고 했다. 이희영이 다시
"이것은 검찰총장의 공식 요구사항인데 뭐라고 답변하면 되겠습니까?"
라고 물었다. 장도영은 이렇게 말하더란 것이다.
"검찰총장은 나하고 친한 사이야. 내가 알아듣도록 얘길할 테니까
걱정말고 돌아가 있어.".
이로써 장면정부는 박정희의 쿠데타를 저지할 수 있는 최후의 기회
를 놓치고 만다. (내일부터 '제9부 혁명전야'편이 연재됩니다.).
(* 조갑제 출판국부국장 *)
(* 이동욱 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