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숙, 원숙한 연기 돋보여…파격적 결말 처리도 인상적 ##.
한국영화 '정사'(10월 3일 개봉)는 건축가 남편과 열살난 아들이
있는, 서른아홉 유부녀 서현(이미숙)과, 그녀의 동생과 결혼을 목전
에 둔 스물여덟의 우인(이정재) 사이에 벌어지는 금지된 사랑 이야
기다.
금지된 사랑이니까 정신적인 것에 머물겠거니 짐작한다면 큰 오
산. 갑작스러운 우인의 입맞춤을 계기로 둘은 우인의 방, 오락실,호
텔방, 학교 교실 등, 장소와 때를 가리지 않고 정사를 나눈다. 다소
엉뚱하면서도 직접적인 제목이 암시하듯, 영화는 오히려 육체적으로
흐른다.
아무리 아름답게 묘사되더라도, 아무리 그럴 듯한 명분을 대더라
도, 이쯤되면 영화는 사회통념상 도저히 받아들이기 곤란한 불륜담
인 셈이다. 사랑에서 섹스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드러내는 것
만이 아니라 감추고 참는 것도 사랑이라면, 불륜성은 더 도드라진다.
여느 영화와는 달리 서현의 남편이 유난히 나쁘지 않고 오히려
어리석을 정도로 사려깊고, 서현의 동생 또한 특별히 잘못한 점이
없다는 설정을 고려하면, 더욱더 그렇다. 서현과 우인은 욕정을 제
어하지 못하는 발정난 암컷과 수컷에 지나지 않는다고 마구 욕할 관
객도 있을 터다. 언뜻 줄리엣 비노쉬, 제레미 아이언스 주연의 '데
미지' 변종같다는 느낌도 든다. '불륜 소재의 결정판'이라고 내세우
는 것을 보면, 영화를 만든 이들도 그러한 힐난이나 의혹에 대해 그
다지 강한 반박을 할 순 없을 듯 하다.
그러나 관객들이 지니고 있을 그와 같은 통념을 훌쩍 뛰어넘고
비웃는다는 점에서 '정사'는 우리 영화에서는 흔히 보기 힘든 도발
적 문제작으로 다가선다. 제도권 상업영화의 결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의 파격적 결말에서 그 도발성은 가장 두드러진다.
겹겹의 금지된 사랑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그들을 원래 위치로
원상복구(?)시키지 않고 독자적으로 길을 선택, 걷게 하는 열린 결
말을 제시하고 있다. '정사'가 여느 보수적 불륜 영화는 물론, 그에
못지않은 '데미지'보다 한수 위에 위치할 수 있는 까닭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한 파격을 가능하게 한 것은 무엇일까. 어지간한 파격과 자
극이 아니면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관객들을 유인하고 뒤흔들고
자 하는 의도를 지닌 기획력일 수도 있다. 가족의 신성함도 중요하
지만 개인의 행복 역시 그 못지 않게, 어쩌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그래서 그것은 더 이상 지켜질 수없다는 도전적 메시지일 수도 있다.
"사랑은 정답이 없다…. 사랑, 열정, 그리고 그것들의 아이러니
를 새로운 언어로 바꿔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이재용 감독(33)의 사
랑에 대한 견해일 수도….
불륜을 향한 맹목적 거부를 일단 떨쳐버리고, 영화 함의에 눈길
을 줄 때,'정사'는 몇가지 미덕으로 빛난다. 우선 이미숙의 원숙한
연기력.
전라로 펼친--대역을 썼는지 여부는 확신이 없다--열연도 그렇거
니와 리얼리티를 높이는데 결정적 기여를 한, 연륜이 밴 표정 연기
는 큰 즐거움을 선사한다.
비선정성도 칭찬받아야 할 미덕. 행위보다도 사실적 신음 소리가
더욱 인상적인 오락실에서의 제법 긴 정사를 포함, 두 사람의 정사
나 벌거벗고 있는 모습이 비춰지지만 선정적이거나 야하지 않다. 오
히려 퍽 자연스럽다.
편집에 의해 특정 신체 부위를 쓸데없이 클로즈 업하는 따위의
진부한 관행을 사용하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둔 채, 때론 짧게 때
론 길게, 변화를 주며 카메라가 그들을 차분히 응시하기 때문이다.
흔한 장면 전환 수법인 페이드 아웃으로 거리감을 확보해 관객들
에게 인물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것이나, 대부분 신인 감독들
이 유행처럼 화려하고 감각적으로 꾸미는데 열중하는 것과는 반대로,
안정적이고 복고적인 느낌이 들도록 화면을 구성한 것도 불륜이란
소재의 거부감을 상쇄시켜 주는 덕목이다.
'정사'가 새로운 영화 언어를 구사했다고 주장한다면 동의할 수
는 없다. 하지만 대중적인 동시에 감독의 개성을 발휘해, '이재용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면 기꺼이 동의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