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년간 '신의 대륙' 음악여행…음율 규칙 없는 즉흥연주가 ##.
♧ 81년 서울대 작곡과에 입학한 김창수씨는 그레고리안 성가, 모
차르트, 시벨리우스와 같은 고전음악에 심취했다. 졸업할 무렵 교
내 실험음악제에선 '섭씨 33도', '미라쥐 르 땅'이라는 제목으로 구
체음악, 전자음악을 발표했다. 85년 육군사관학교 군악대 시절에는
군장성들의 가든 파티에 '단골 악사'로 불려다녔다.
그리고는 훌쩍 인도로 날아간 게 88년. 이번에는 인도의 악기 시
타르, 타블라, 비치트라 비나, 사랑기를 하나씩 익혔다. 시작도 끝
도 없이 '기본적인 약속'만 있을 뿐인 인도음악을 끊임없이 흥얼거
렸다. '디기디기디기 딧기뜨라∼'.
히말라야 산맥을 바라보며 갠지스강가에서 음악과 함께 한지 어
언 8년. 피아노보다 시타르가 편해졌고, 인도어는 사투리로 농담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 지난해부터는 8년간의 '인도 여행'을 강단에
서서 제자들에게 전하고 있다. 5년 전 펴낸 '티벳 불교 예불' 음반
에 이어, 최근엔 4년간 현지 녹음한 '인도 명상음악' CD 8장도 펴냈
다.
지난 12월 3일 서울 삼청동 한 찻집에서 만난 김창수씨(37·서울
대 음대 강사)는 '인도음악가'라는 이름에 걸맞게 전통 인도 의상인
쿠르타 차림이었다. 어깨에 걸친 스카프와 헐렁한 베이지색 웃옷에
달린 꽃모양 빨간 단추가 눈에 띄었다.
인도 바나라스 힌두대학에서 학·석사 과정을 수석으로 마친 그
는, 96년 귀국한 후 틈틈이 독주회도 열고 있다. 독주회 테마를 '소
리 그리기'로 잡고 있는 이유를 물어보았다.
"시간 속을 여행하고 있는 소리에 색채를 입혀서 음악이라는 형
태로 그림을 그립니다. 보이지 않는 소리들을 캔버스 위로 끄집어내
꿈틀거리게 하고, 잔잔히 어루만져서 소리 여행의 방향을 도와주는
것이죠.".
인도 생활 8년에 명상가가 다 됐는지, 알듯 모를 듯한 말을 자주
던졌다.
어쨌거나 그는 소리를 '지배'해서는 안되고 '인정'해야 한다는
주의다. 연주도 정해진 선율을 기계적으로 따르는 기술이 아닌, 순
간 순간의 미학이라고 강조한다.
인도음악에는 그래서 빠져들었는지 모른다. 서양식으로 선법, 한
국식으로 조에 해당하는 '라가(raga)'라는 중심 선율만 있는 인도음
악은, 즉흥연주가 특징이기 때문이다.
그는 "인도음악은 연주자는 물론 연주 당시 감정 상태나 분위기
에 따라 달라진다"며 "연주자는 작곡자가 됐다가 청중이 되기도 한
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일정한 틀이 없이 멋대로 하는 건 아니다'고 말한다.
"해가 뜨기전, 뜨고 있을 때, 완전히 떠오른 때, 뜬 직후…. 그
나름대로 소리내는 법칙이 있어요. 애간장을 태우면서 길게 끌다가
조였다가 하죠.".
악보에 엄격하고 개성이 덜 드러나는 서양 음악보다, 연주가의
정서가 드러나는 동양 음악이 그의 정서에 더 잘 맞는다고 했다. 전
자 음악과 클래식기타에 심취했던 그의 '전력'과는 왠지 어울려 보
이지 않는다. 그는 '인도행' 이유를 "이것 저것 하다보니까 돌파구
를 찾아야 했는지도 모른다"고 설명했다.
그는 '선생님' 기질 때문인지, 인도음악에 대해 강의하듯 말을
늘어놓았다. "비발디의 '사계'처럼 틀이 짜여 있진 않지만 계속 반
복되는 음들 사이에 클라이맥스가 있어요." 곡 전체를 이어가는 지
속음 안에서 악기들은 제 음을 찾아가고, 한 악기가 선창하면 다른
악기들이 흐름에 동참하는 사이에 클라이맥스에 도달한다는 것. "도
달하는데 미학이 다를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중학교 때 클래식 기타를 배우면서 음악의 길에 빠져들었
다. 성악가이던 어머니 영향도 받았는지 모른다. "음악이 좋아" 작
곡과에 들어갔고 플루트와 트럼펫은 물론 거문고 연주도 틈나는대로
배웠다.
육군사관학교 군악대 시절, 낮에는 편곡병과 연습 지휘자로, 밤
에는 밴드마스터로 클래식과 팝송·샹송을 가리지 않고 연주했다.전
직 대통령들은 물론, 이름만 대면 다 아는 고위 군 관계자들 앞에서
였다.
인도음악에 대한 호기심은 82년 동남아 여행 때 처음 생겼다. 처
음엔 '다르다'는 데서 매력을 느꼈지만, 자꾸 끌려들었다고 한다.인
도의 한 음악대학 학장이란 사람을 우연히 알게 되고는, 88년 무작
정 짐 하나 달랑 메고 인도로 갔다.
"북부의 하마찰 프라디쉬주라는 대학이었는데 강의실, 합주실,학
장실, 교무실 딱 한 개씩 밖에 없는 곳이더군요. 말도 안 통하고 음
식도 안 맞고….".
하지만 인도에서 '음악=인도음악'이라는 점은 그에게 작은 충격
을 주었다.
"'음악 공부한다', '음악회 가자'고 하면 모두 인도 것이에요.영
국 지배를 받았지만 자신들의 문화를 확실히 지켜온 셈이죠.".
인도의 유명 음악원인 델리의 간다르바 음악대학과 비나라스 힌
두대학에서 인도 전통 음악을 배웠다. 서양 음악의 바이브레이션,한
국 음악의 농현(떨림) 같은 것들이 다른 모습으로 인도음악에 있는
걸 알았을 땐, 어찌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어쩌면 그에게 인도음악 공부는 자신의 수양 과정이었는지도 모
른다. 본인이야 "명상가도 철학가도 아니다"고 하지만 "철학적 사고
없이 인도음악 공부를 하기는 어려웠다"고 한다. 인도를 좀 더 알고
느낄 생각에, 인도인들과 자주 어울리고 인도 음식도 열심히 먹었다.
이제는 버릇이 돼버린 물구나무서기와 하루 4시간 수면은 이 때 '의
도적'으로 익힌 것들인지 모른다.
김씨는 "윤회 사상 같은 거창한 얘기는 안한다"면서도 "인도인들
이 창조한 '0'이란 수학적 개념 안에는 우주의 순환, 영원성이 담겨
있다"고 했다. 그는 "신과 인간, 자연과 우주의 하모니를 이뤄야 한
다"는 식의 얘기를 끊임없이 했다.
이번에 펴낸 '인도 명상 음반'에도 그의 '철학'은 나름대로 녹아
있다. '비스마야·경이로움'편은 쇄나이의 선율 속에서 아침을 맞는
인도인들의 경건함을, '아난다·행복'편은 기쁨과 슬픔의 감정을 노
래했다고 한다. '사드나·구도'편은 인간의 목소리를 가장 닮았다는
현악기 사랑기로, 구도의 길을 떠나는 명상가의 발걸음을 그려냈다
는 것.
그가 '여행'이라 표현하는 인도음악 공부는, 그에게 무한한 자유
로움을 준 것 같다. 음악을 보는 눈에도 '∼해야 한다'는 없어진지
오래다.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이 베토벤의 '운명'보다 못하리란
법이 없어요. 제가 인도음악하는 사람이지만 팝송이나 재즈도 좋아
해요." 서양 음악에 대한 반감이 있는 것도 절대 아니라고 한다.
그는 '인도 명상음악'하면 일단 어렵게 느끼는 사람들에게 '편안
함'을 강조한다. "인도인들의 심오한 명상 세계에 다가선다고 거창
하게 생각하지 말고, 선율에 그저 마음을 내맡기라"고 한다.
그는 요즘 신세대 학생들을 통해 오히려 배우고 있다. '고리타분
하다'면서 서구 음악을 좇기보다는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훨
씬 적극적이더라는 것. '새로운 것', '다른 것'에 대한 목마름은 그
에게 아직도 계속 되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미술관에서 열리는 실험 음악제 같은 자리에서 연주
하는 것을 즐긴다.물론 인도식 전통 합장으로 시작해 오색가지로 수
놓은 화려한 인도 전통 의상을 갖춰 입고서다.
인도에서 4년간 음반 제작을 하느라 바쁘다가 요사이 잠시 숨을
돌리고 있다는 그는 학생들을 가르치랴, 음반 홍보하랴 바쁘지만 갠
지스강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늘 그대로라고 한다.
"배 타고 지나갈때 보이는 목욕하는 모습, 해 뜨고 지는 광경이
눈에 선해요. 그 속에 울려퍼지던 사원의 종소리, 동물들 우는 소리,
사람들 웅성거리는 소리는 말할 것도 없구요.".
김씨는 인도에 대한 추억도, 눈으로가 아닌 귀로 되씹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