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탑건'. 스물 여섯 한호명씨의 꿈이다. 공군 소위로 조종사
훈련중인 그는 고2때 부모의 반대를 무릅쓴 자퇴 경험이 있다. 컴퓨터
말고는 하고 싶은 게 없었다. 중학교 때는 전교 1등까지 했다. 하고 싶
던 컴퓨터에푹 빠졌지만 어딘가 허전했다. 어렸을 적 꿈인 비행사가 되
려고 검정고시를 거쳐 94년 공사에 합격했다. 그는 "대한민국 공군의
능력을 세계에 과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겠다"며 요즘도 틈만
나면 컴퓨터에 몰두한다.


사진설명 :
컴퓨터매니아 신주영씨, 순정만화가 유시진씨, 공군중위 한호명씨.(왼쪽부터)

만화가 유시진(28·여). 서울대 서양사학과 89학번인 그녀는 대학

진학 직후부터 만화에 미쳤다. 아마추어 만화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학

교를 거의나오지 않아 학점은 엉망이었고, 6년만에 간신히 졸업했다.끝

내 92년 만화잡지 '댕기'에 발표한 '지난 봄 이야기'를 시작으로 순정

만화가로 데뷔해, 지금은 여중고생들 사이에 "유시진 모르면 간첩"이란

말을 듣고 있다.

'나만의 삶'을 찾아 거침없이 질주하는 젊은이들. 정치 이데올로기
가 사라진 90년대를 호흡해온 젊은 세대들에겐 한씨나 전씨가 이단아가
아니다. 이전 세대와 확연히 다른 새로운 감각과 정서, 가치관으로 몸
을 두른 젊은이들. 이들의 별칭은 '서태지 세대'다.

90년대 초입,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은 새로우면서도 낯설고 애
매했던새 세대의 정체를 확인시켜준 '사건'이었다. 공고 1학년 중퇴 학
력으로 아무도 예측못한 랩뮤직을 들고나와 단숨에 대중문화의 물줄기
를 돌려버린 서태지는, 새로운 세대가 우리 사회의 전면에 나섰음을 알
리는 신호탄이었다.

"매일 아침 일곱시 삼십분까지 우릴 조그만 교실에 몰아넣고/(…)
막힌 꽉막힌 모두가 막힌/ 널 그리곤 덥썩 우릴 먹어 삼킨 이 시꺼먼
교실(…)" 서태지는 '교실 이데아'에서 '꽉 막힌 학교'를 통박했지만,
꽉막힌 것은 학교뿐이 아니었다. 신세대들에게는 우리 사회 전체가 획
일화를 강요하는 질식할 것 같은 공간이었다.

그들은 닫힌 시스템에 순종하거나 머무르지 않는다. 누가 뭐라든
자신의 세계를 찾아 떠난다. 남보다 튀려하고, 원하는 것에 미친다. 필
요하면 컴퓨터 리셋(reset)버튼을 누르듯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롭게 도
전한다. 서울대 국문과를 나와 법대에 편입한 후 공법학과를 수석졸업
한 박준(30)씨는 고시대신 벤처기업가로 변신했다. 97년 벤처기업 DB&SOFT
사를 차린 그는 작년일본에 데이터베이스 프로그램 30억원어치를 수출
하는데 성공했다.

서태지 세대의 깃발은 '자유와 도전'이다. 여기에 '개성과 창의'라
는 경쟁력으로 무장하고, '신바람' 나는 일을 찾아 몸을 던진다. 네트
워크게임에 인생을 걸고 대학도 안간 스타크래프트 세계챔피언 신주영
(22), 세계 최초로 '미래의 워크맨' MP3플레이어를 개발한 디지털캐스
트 사장 황정하(32), 서울대 출신 순정만화가 유시진(29)….

숨가쁘게 변할 새로운 천년은 이들의 세상이다. 자유, 도전, 실험
정신, 개성, 창의, 다원주의, 열린사회를 지향하는 신인간들의 무대
다. 이들이 21세기 한국사회의 지도를 그리고, 이 땅에 신바람을 불어
넣을 동력이자 기관차다.

"우린 약하지 않아. 어린애가 아니야. 마음을 합하면 모든 걸 해낼
수 있어."(서태지와 아이들 '우리들만의 추억' 중에서).

(* 양근만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