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색 인종에 일자리 빼앗긴 백인 룸펜들의 삶 묘사 ##.
♧ 오래된 TV 연속극 '뿌리'에서, 네오 나치를 연기했던 말론 브랜도
는 인터뷰를 하러간 흑인 기자를 향해 천연덕스럽게 살충제를 뿌려댔다.
해충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메리칸 히스토리 X(4월 17일 개봉)'에 등
장하는 그의 후예들이야말로 파리떼 같아 보인다. 악취 나고 성가신 사
회의 해충. 스파이크 리 이후 세대의 흑인 영화가 흑인 그룹 내부 갈등
과 편견을 고발하고 단결과 연대 투쟁을 선동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다가
그나마도 시들해지고있는 요즈음, 난데 없이 등장한 이 백인 영화는 충
분히 충격적이다. 아주노골적이기 때문이다.
여기 묘사된 네오 나치 세력은 굉장히 솔직하다는 면에서 우선 마음
에 든다. '오데사 파일'류의 스릴러에 흔히 나오는, 밀실에 숨어 국제적
인 음모를 꾸미는 엘리트 잔당과는 전혀 다르다. 이들은 젊고 무엇보다
도 노동계급이기 때문이다. 바로 새로운 스킨헤드들이다.
영화 역사에서 '아메리칸 히스토리 X'는 다른 어떤 것보다 우선해서,
90년대 미국 대도시, 특히 LA 스킨 헤드 무리에 관한 민속지 리포트로
기억될 공산이 크다. 이들은 '단지 미움받고자 하는 욕망으로' 나치 문
장을 장식물로 선호했던 70년대 영국의 원조 스킨 헤드와는 달리, 아주
적극적이고 의식적으로 인종주의를 추종하는 훨씬 질이 나쁜 아이들이다.
그러나 찢어진 청바지에 러닝 셔츠, 스바스티카 문신, 그리고 박박
밀어버린 머리로 특징지워지는 그들이 영화에서 늘 운수 나쁜 날 뒷골목
에서 마주치는 깡패 정도로만 대접받아 온 것도 사실이다. 말하자면 소
외된 것이다.
따라서 'X'는-그 유치한 설교투와 선정주의, 싸구려 MTV 스타일에도
불구하고-그들을 주인공 삼은 최초의 상업 영화라는 가치를 지닌다.
'상업주의와 부르주아화의 침입에 저항하여 전통적인 노동계급 문화
의 퇴색되어가는 쇼비니즘을 부활하려는 집단'으로 정의되어온, 이 어찌
보면 불쌍한 아이들은 이제서야 자기네에 관한 구체적인 묘사를 얻게 된
셈이다.(비록 관계는 역전되었지만) 카소비츠의 '증오'에 대한 미국식
응답으로 볼 수도 있는 이 영화에서, 그들은 타고난 악마가 아니며 잘못
인도된, 또는 그런 방식으로 밖에는 계급 갈등을 폭발시킬 수 없는 궁지
에 몰린 자들로 그려진다. 이 점, 근래 흑인 영화에서 겁없이 총을 휘둘
러대고 코카인을 들이마시는 그 녀석들과 본질적으로 같다는 주장이 설
득력 있게 전개된다. 그런 면에서 또한 이것은 '사회에의 위협'에 대한
백인식 응답이기도 하다.
가난과 불평등의 원인을 남에게서 찾지 말라는, 주인공 데릭이 흑인
을 비난하는 장광설은 그대로 스스로에게 적용해도 전혀 무리가 없는 일
종의 부메랑이다.
데릭의 영특함, 청결함, 남성적 매력, 마약에 대한 혐오, 육체를 건
강하게 유지하려는 편집증적 노력, 애국정신, 질서와 권위를 중시하는
태도, 노동에의 예찬, 종교적 경건함 따위의 특징은 근본적으로 청교도
적인 것이다.
결국 스킨 헤드의 폭력 숭배, 마초주의, 인종주의는 다 거기서 나온
것이다. 데릭은 백인 지배계급이라는 동전의 어두운 이면이다. '지옥의
묵시록'에서의 배코머리 로버트 듀발은 '베트남의 스킨 헤드'가 아니었
던가.
우리는 여기서 '케이프 피어'의 맥스 케이디가 조직 지도자로 변신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천재적인 에드워드 노튼은 거기서의 드 니로 부럽지
않은 문신 미학을 선보이고 있으며, 헤어 스타일에 대한 관심은 '택시
드라이버'에까지 닿아 있다. 의식화되고 조직화된 이 백인 쓰레기(white
trash) 집단은 자기들이 KKK와 동일시되기를 거부한다. 그 따위 무식한
시골뜨기 농사꾼(redneck) 무리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가소로운 소리만
은 아닌 것이,남부의 그 백가면들이 부유한 농장주 내지는 자영업자였던
데반해, 우리의 주인공들은 유색 인종에게 일자리를 빼앗겨 오갈 데 없
어진 룸펜 프롤레타리아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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