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운동 80주를 맞아 중국 북경대학에서 지난 1일부터 3일까지'5·
4운동과 21세기의 중국'이라는 주제의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한국
측대표로 참가, 논문을 발표한 민두기(67)서울대명예교수는 최근들어
중국 근대사의 중요한 분수령이었던 5·4운동에 대해신학설이 등장하고
있다고 현지 표정을 전했다. (편집자).
지난 4일은 중국에서 5·4운동이 일어난지 80년째 되는 의미있는 날이
었다. 10년전, 5월을 전후하여 5·4정신을 기릴 것을 표방하여 천안문사
태가 일어났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금년은? 하고 관심을 쏟았었다.운
동의 진원지였던 북경대학이 주최하는 5·4운동 80주년 기념 '5·4운동과
20세기의 중국' 국제학술 토론회에 참석하러 북경에 와서 본 5·4운동 기
념은 의외로 조용하였다.
5월4일 오후 3시, 장쩌민(강택민) 주석을 비롯해 6천여명이 참석한 기
념대회가 인민대회당에서 열렸고, 그자리에서 국가 부주석 후진타오(호금
도)가 '강화'를 발표하였다. '강화'의 내용은 예상했던대로 애국, 진보,
민주, 과학의 5·4정신을 계승하여 중국특색이 있는 사회주의 건설을 성
공시키자고 체제강화를 청년들에게 호소하는 것이었다.
중앙텔레비전에서 5·4운동을 기념하는 역사드라마가 방영되고 축하
연예행사도 대대적으로 방영되기도 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보아 기념행
사를 되도록 덜 요란스럽게 하려는 의도를 여기저기서 엿볼수 있었다. 10
년전의 뼈아픈 경험 떠문일 것이다. 5·4운동기념 '강화'도 일주일전까지
만 해도 장쩌민 주석이 하기로 되어있었으나 후진타오가 하기로 격을 낮
추었다는 소문도 그런 의도와 관련이 있는것 같다.
약 70여명의 중국내 참석자중에 공산당사 연구기관에 속한 사람들이
예상이상으로 많은 것도 눈에 띄었다. 5·4운동과 중국공산당의 발전을
연결시켜 등소평체제를 굳건히 하려는 의도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러
나 참석자 중에는 중국의 펑민(팽명), 미국의 조우처쫑(주영종)과 슈바르
크즈, 일본의 마루야마 마쓰유끼(환산송행)등 일찍이 5·4운동상을 정착
시킨 개척적 저술을 낸 대표적 학자가 모두 참석하여 그나름의 특성이 있
었다. 한국인 참가자 4명(1명은 현지참석)을 포함한 외국에서 온 학자는
세계 각국에서 20여명이었다.
첫날 있었던 나의 발표는 중국의 공식적 5·4운동성격론에 약간의 이
의를 제기하는 것이었다. 발표에 앞서 조심스럽게 "나의 주장은 중국에서
는 환영받기 어렵겠으나 5·4운동의 자유정신에 따라 들어주기 바란다"고
운을 뗐으나, 토론자들의 반응은 의외였다. 중국학계에서 존경받는 지성
사가 한 사람이 내 견해를 지지한다고 논평했고 또다른 사람도 비슷한 말
을 하였다. 나의 발표를 끝내고 여기저기 분과회를 기웃거리며 얻어들은
바로는 5·4운동의 평가에는 정부의 공식적 견해를 지지엄호하는 구파적
견해와, 5·4운동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재구성하고 정확한 의미분석을
하여 정치적 신화화의 함정을 경계해야한다는 신파적 견해가 뒤엉켜있었
다.
게다가, 해외에서 참가한 중국계 학자들은 아예 십자군으로나서 당국
이 주도하는 체제유지적인 정치적 해석을 기회있을 때마다 대담하게 공박
하여 신파가 차마 말못하는 점을 대변하고 나섰다. 북경대학 구내의 '5·4
의 길'앞의 도서관 강당에서 있었던 첫날의 공개강연에서부터 해외파의
포문이 열려 5·4운동정신을 체제유지이론으로 이용하는것을 맹박하였다.
구파적 해석이 5·4운동의 애국적 성격을 강조하여 그것을 체제유지와 연
결시키는 것에 대해서도, 진정한 애국은 정부를 비판하는것이며 이는 지
난날의 역사에서도 그러하였고 5·4운동때도 그러하였다고 정부를 겨냥하
는 화살을 쏘고 있었다. 종합토론 때는 5·4운동을 반봉건·반제국주의운
동이라고 하는데 그런 증거가 있느냐고 따지기도 하였다. 참다못한 주최
측의 한사람(북경대 부총장)이 분연히 일어서서 5·4운동의 애국적성격을
얼굴을 붉히며 강조하여 등소평이론을 지원하는 촌극도 있었다. 또다른
한국인 참석자인 연세대의 백영서교수가 발표한 5·4운동기 학생들의 애
국투사 이미지와는 또다른, 정신적 방황과 갈등을 실증하는 논문도 신파
들은 적지않은 지원으로 받아들이는 듯 하였다.
중국의 5·4운동은 지난 80년 동안 현실의 힘이 갖가지 해석을 강요하
는, 늘 살아있는 보편성있는 과제였다. 그 과제의 실현속도가 너무 느리
고 더디었기 때문에 그 과제의 해결이 조급하게 요구될때마다 5·4운동은
되살아나곤 하였다. 그러나 민주화가 상당히 달성된 대만에서는 5·4운동
은 과거화되어있다. 중국도 다가오는 21세기에는 5·4운동의 실상으로 돌
아가 과거화되어 더이상 현실적 과제로서 되살아나지 않게되는 날이 올런
지?.
더이상 대대적으로 5·4운동을 기념하지 않게 될 날이 올지 두고 볼 일
이다.
(서울대명예교수·중국근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