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고 새로운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듯한 시대다. 14일 문예회
관 대극장에서 막올린 극단 신협의 창작극 '툇자 아저씨와 거목'엔 그
런 세태를 향해 한마디 하고 싶은 중진들 생각이 깔려 있다. 만든 이
들 면면부터가 그렇다. 각본을 쓰고 연출한 전세권(62)씨는 40여년간
TV방송 드라마와 연극 연출을 오가며 활동한 중진. 주요 출연진들도
'어른'들이다. 연극계 황금의 콤비인 전무송-이호재가 모처럼 함께 무
대에섰고, 87세 고설봉옹을 비롯, 황정순 최대웅등 원로급 연기자들이
함께 섰다.

이들이 만든 연극 '툇자 아저씨와 거목'은 변하는 세상에서 변치않
고 지켜야할 어떤 것을 이야기하려는 듯하다. 70년대 서울 인사동. 무
대 한 구석엔 다 찌그러져 가는 기와집 한채가 엉거주춤 서 있고, 안
마당엔 몇백년은 족히 됐음직한 늙은 나무가 떡 버티고 있다. 세태를
거스르며 낡은 나무를 정신적 지주로 부둥켜 안고 사는 인물은 인쇄중
개업자 태공(이호재)이다. 제작한 인쇄물이 늘 퇴짜를 맞아 '툇자아저
씨'(맞춤법에 따르면 '퇴짜'가 맞을듯)다. 이북 출신인 태공과 어울리
는 실향민 노인이 둘 있다. 무위도식하며 사는 만담가 양념(전무송)과,
머리가 백발이 됐어도 첫사랑을 못잊어 하는 공염불(오영수)이다.

이 연극은 세상에 발빠르게 적응하지 못한 실향민 노인들의 50년
인생을 펼치며 진지한 주제를 담아내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의 울림은 크지 않다. 관객의 가슴과 머리
를 움직이는 설득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거대한 나무를 '거목'이라 받
드는 노인과 이 나무를 '고목'이라며 버리자고 주장하는 아들과의 갈
등을 통해 세대간 대립을 드러내려 하지만, 그것은 너무 진부하고 상
투적이다. 갈등의 해소도 인물들끼리의 치열한 부딪침 끝에 이뤄지는
게 아니라 '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고민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외적상황 변화로 해결된다. 인물들은 대개 '어디선가 본 듯' 도식적이
다. "당신은 내가 사랑하지 않고는 못배길 사람이야" 라는 식의 부자
연스런 대사들도 극의 현실감과 설득력을 반감시키는데 일조한다. 방
랑 인생에 달인의 풍모를 얹어 연기한 전무송과, 외곬수 노인의 얼굴
을 보여준 이호재의 연기에선 관록이 느껴지지만, 헛점이 보이는 각본
속에서 고전하고 있다. 아이러니칼하지만, '낡은 것의 소중함'을 제대
로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참신한 언어가 필요하다. 노년세대들끼리의
자기확인을 넘어, 젊은 관객들과의 소통을 원한다면 더욱 그렇다.(02)
501-0227.
(* 김명환기자mhkim@chosun 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