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환상) 소설'을 아십니까. 읽어 보셨습니까.
그것이 무얼 말하는지, 도대체 언제부터 있은 문학장르인지
뚜렷한 윤곽으로 떠오르는 어떤 개념이 있으십니까. 현시기 이
른바 본격문학, 순수문학이라고 말할 수 있는 영역에 하나의
뚜렷한 대항세력으로 대들고, 그 자리를 넘보고 있는 판타지
소설은, 문학판의 기성세대들이 엄숙한 오불관언으로 일관할
수 없을 만큼, PC 통신망에 그리고 자녀들의 책꽂이에 영토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대화중인 평론가 정과리 교수
중세적 분위기, 혹은 고대 그리스 또는 북구 설화를 바탕으
로 한 분위기에 창조된 환상의 세계를 엮어 가면서 모험 이야
기를 펼쳐 보이는 판타지 소설.
판타지 작가들과 출판업계는 수십 수백만 청소년 독자들에
게 연거푸'흥행작'들을 터뜨리고 있고, 한편에서는 적극적 멸
시, 비판적 격려, 아니면 그 정 반대편에 서 있는 논의가 혼재
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판타지 소설은 문화현상으로 자리를 굳
혔다는 반증입니다. 98년은 판타지가 한국에 새로 뿌리를 내렸
다면, 99년 상반기는 놀라운 속도로 독자를 확장한 시기였습니
다. 오늘 판타지에 비판적 애정을 쏟고 있는 평론가 정과리 교
수(충남대·불문학·42) 그리고 '드래곤 라자','퓨처 워커' 등
의 저자로 판타지 소설의 선두를 이끌고 있는 이영도 씨(27)가
자리를 함께한 이유입니다.
-(정과리) 저는 통신망에 올리는 소설을 봐 오다가 요즘은
보지 않습니다. 중학생을 위한 무협소설 수준으로 전락해 있었
습니다. 그러나 이 형의 소설은 현실성에서 벗어난 가공이면서
동시에 현실에 연결돼 있었습니다. '현실이 아닌 것 같은 데
현실인 것' 그리고 현실에 대한 암시가 의도돼 있다고 보았습
니다. 비현실이 너무나 비현실이면 일종의 공포를 일으킬 것이
고, '경악체험'은 거꾸로 현실로 돌아오기도 할 것입니다. 현
실을 일그러진 방식으로 비현실 속에 집어넣는 것이 판타지랄
수 있겠습니다. '좋은 판타지'를 지향하면 나오는 결과지요.
-(이영도) 추리소설은 작가와 독자가 벌이는 양쪽의 게임입
니다. 거기엔 반드시 범인이 잡혀야 한다는 철칙이 있습니다.
판타지의 철칙은, '그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따지지 말아야 한
다'는 것입니다. 비현실을 인정하고 소설 속에 들어와야 합니
다. 현대 독자에게 판타지가 기사도 문학을 생각케 함에도 읽
히는 이유는, 그들이 작가와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문
화적 습득을 거친 독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정) 그렇게 가면 오래 살아 남기가 힘들 것입니다. 사람
들에게 오래 생각나게 하는 무엇이 있어야지요. '퓨처 워커'의
첫부분에 북풍이 나오는데, 이것은 운명에 대한 체험을 환기시
키면서, 작가가 현실적인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는 게 아닌가,
삶이란 무의미하다는 쪽으로 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갖게 했습니다.
-(이) 제 작품이 비극적 전조가 됐으면 했는데, 오히려 그
말씀이 기쁩니다. '퓨처 워커'는 시간의 문제를 다룬 것입니다.
바람은 멈춰 있는 게 아니고, 시간도 멈추지 않습니다. 둘다
끊임없는 운동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자살충동을 느낀 건 아닙
니다.
-(정) 시간은 멈추지는 않지만, 거꾸로도 옆으로도 가기도
하고 때론 여러 줄기가 있을 수도 있지요. 그렇게 복합적인 시
각이 이 형 소설에 들어갔으면 합니다. 시간에 대해 지고 들어
가서는 안되지요.(만화와 판타지는 어떻게 다릅니까.)
-(정) 한국에서 SF와 추리물은 안되는데 왜 판타지는 되는
가 따져 봅시다. SF와 추리물은 머리를 써야하나, 판타지는
일본 만화라든가, 일본 쪽에서 유행하는 판타지의 압도적인 영
향을 받았기 때문이 아닌가 혐의를 둘 수 있습니다. ▲자극적
인 것 ▲생각을 단순하게 하는 것 ▲현실 밖으로 쉽게 벗어나
고자 하는 '이탈 충동'등을 만족시키려는 것이지요. 우리의 판
타지는 청소년이 중요 독자층입니다. 우리 청소년들이 외국에
비해 돈쓰기가 자유롭다는, 그래서 판타지 소설을 구매하는 게
어렵지 않다는 요인도 있습니다.
-(이) 문화란 혼자 발생하는 게 아니니 다른 문화의 영향을
받는 건 당연합니다. 우리 청소년들은 구매력이 있으니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완전히 일본을 따라 가
는 것은 아닙니다. 은연중 자기 색깔을 찾아가는 것이지요. 모
방한다고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니고, 그중 하나라도 코드가 맞
는 게 있어야 합니다. 나는 글의 힘을 믿습니다. 판타지 작가
중 만화를 좋아하고 만화가 지망생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판
타지가 만화의 종속물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정) 해외에서는 SF, 추리물, 판타지 등이 이른바 '하위
장르'로서 계속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불균
형으로 가고 있습니다. 판타지가 중요 장르로 정착했으니 좋은
방향으로 발전했으면 하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판타지는 문
학 자체가 가지는 현실을 일깨웠고, 지평을 넓히는 작업에 일
조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판타지는 제목, 등장인물, 여러가지
활약상 등이 너무 외국어 일색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이) 외국어 이름은 판타지 매니어에게 하나의 코드로 작
용하는 것들입니다. 번역하면 오히려 낯설어지는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J.R.R. 톨킨의 '반지 공주'같은 작품에서 보듯 해외
판타지를 번역할 때 너무 많이 한글로 바꾸면 원작의 향기가
손상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원전과 기원이 있는 것은 그
대로 놔두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정) 우리 사회에 판타지 매니어가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
지 않습니까. 더더욱 매니어를 위한 글쓰기는 아니지 않습니까.
외국어 남용은 비현실감을 주려는 것이 아닙니까.
-(이) 한국의 판타지는 정말 가능성이 있습니다. 제가 생각
했던 것보다 훨씬 넓습니다. 그렇기에 판타지 작가 개개인들이
해야할 역할과 작업은 더욱 막중합니다.
-(정) 그것은 지나친 낙관이 아닌가 합니다. 판타지를 좋아
하는 사람들보다 주변적인 힘들이 판타지의 가능성을 억압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 판타지는 너무 편향돼 있습니다. 좋은
판타지를 하려는 열정들이 주변 압력에 저항해야 합니다.
-(이) 저항의 힘도 없다면 그대로 죽어 버려야 하는게 아닙
니까. 판타지에는 판타지의 언어가 있고, '본격 문학'에는 그
쪽의 언어가 있을 것입니다. 물론 큰 차이는 없습니다. '본격'
과 판타지가 같은 지면에 소개돼 청소년 독자를 혼란케 한다고
비평하는 작가가 있다면, 저는 거꾸로 얘기하겠습니다. 이길
수 있는 힘이 없다면 '본격'도 죽어야 한다고요.
-(정) 오늘날 작가가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고 시리즈의
권수를 마구 늘려가는 경향도 우려됩니다. 같은 패턴의 반복과
변주는, 생각을 깨워놓기 보다 의식을 잠을 재우는데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의식을 계속 두드리기 때문에 지루하지는 않습니
다. (판타지 소설은 오래 전부터 있어온 문학장르다. 그럼에도
이렇게 물어보았다. 판타지가 문학입니까.)
-(이) 역설적으로, 문학이 뭔지를 말해 준다면, 나도 판타
지 소설이 문학인지를 답변하겠습니다.
-(정) 한마디로 즉답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장르를 확
대했다는 측면에서 판타지는 문학입니다. 그러나 한국 판타지
는 '문학성'을 말할 단계에 오르지는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