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현감독 `텔 미 썸딩'은 연쇄살인을 다룬 스릴러입니다.
설명을 극도로 아끼는 화법탓에 극장을 나서면서도 명확한
줄거리를 파악하기 어렵지요. 범행동기부터 인물관계까지
명쾌한 게 거의 없지만, 범인 처지를 가늠케 하는 장치가 전혀
없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어린 시절 회상장면을 무척 중요한
설명처럼 암시하지요. 그 회상에서 범인은 아버지로부터 성적
학대를 당합니다. 여간해서 힌트를 주지않는 이 영화가 어째서
어릴 적 상처만큼은 액센트를 줘가며 묘사하는 걸까요.

두차례 등급보류판정을 받아 등급분류방식의 문제점을 웅변하는
장선우감독 `거짓말' 역시 설명을 극도로 꺼립니다. 시종 가학-피학적
정사에 집중하면서도, 역시 남자 주인공의 어린 시절 한 장면만은
중요한 설명으로 내세웁니다. 때리고 맞으며 쾌감을 얻는 현재 장면들
사이에 삽입된 것은 어릴 때 아버지에게 몽둥이 찜질을 당하던 모습이지요.
주인공의 비틀린 욕망이 무지막지한 아버지 폭력에서 상당 부분 기인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지요.

그런데 `텔 미 썸딩'이 그 회상장면을 삭제하고, 대신 꼭 필요했음에도
빠졌던 설명들을 넣었더라면 범인은 훨씬 더 신비롭고 매력적이지 않았을까요.
어차피 이 영화가 설명적이지 않다면 말이지요. `거짓말' 역시 어린 시절에
대한 원작 논리를 따르지않을 생각이었다면, 그 애매한 장면을 끼워넣는 대신
아예 현재 사건에 몰입할 때 좀 더 힘있는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요. 영화 초반
`그냥'을 자막으로까지 내세우며 무조건적 일탈을 웃음과 맞바꾸려는 코미디
`주유소 습격사건' 조차 후반에 등장인물 고교시절을 삽입하며 논리적 해석을
시도합니다. 이 역시 설명 과잉의 세상사를 대변하는 듯합니다.

프로이트 이후 허다한 영화들이 어릴 적 상처에서 `손쉽게' 원인을
제조해냅니다. 정신분석학이 이제껏 설명하지 못했던 많은 걸 해설해내는 게
사실이지만, 정말 그토록 많은 행동들의 원인이 트라우마(정신장애를 남기는
충격)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연쇄살인 동기를 어릴 때 경험에서만 찾는다면,
그건 너무 보수적인 인간 이해가 아닐는지요. 이 모든 것은 과잉설명의
오류일 수도 있습니다. 인과론적 설명이 꼭 전능하지만은 않으니까요. 흄처럼,
인과관계란 아예 연속적 유사 현상들을 필연으로 읽어내려는 주관적 심리과정의
결과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하는 철학자도 없지 않지요.

과거를 이해하면 한 인간 심리를 분석할 수 있다는 것, 특히나 과거 한두
사건이 오늘 그 사람을 만들었다고 판단하는 건 사실 얼마나 게으르고
단선적인 인간 이해입니까. 세상엔 설명할 수 없는 것도 너무 많은데 구태여
설명하려 애쓰는 게 오히려 이해를 가로막는 건 아닌지요. 때론 설명보다
느낌 자체가 이해에 이르는 효과적 통로가 될 수도 있는 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