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윤승운(58)은 3년임기의 간행물 윤리위원회 위원 위촉장을 막
받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이건 뭐 만화가협회 회장 같은 사람이 해야
하는 자린데…, 요즘 만화사태다 해서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나한테까지 차례가 왔나보네요."

겸연쩍어 하며 띄엄띄엄 얘기했지만, 30대 이상 우리 성인독자들에게
그의 이름은 정겹고도 고마운 기억이다. '요철발명왕' '맹꽁이서당'
등이 기억나시는지. 보기만 해도 웃음이 터져나오던 캐릭터들과
역사를 소재로 한 그의 명랑만화는 우리 어린시절을 기름지게 하면서
함께 성장해 왔다. 그리고 환갑이 내일모레인 요즘도 후배들 부끄럽게
만들 정도로 끊임없이 펜을 든다.

최근 두 출판사에서 나온 역사만화에서 그가 요즘 흘린 '땀'을 볼 수
있다. 92년 한국만화문화상을 받았던 작품을 재편집해서 낸 '인물로
보는 우리역사-겨레의 인걸 100인'(산하출판ㆍ전4권)과, 최근
연재했던 조선시대 위인들의 이야기를 묶은 '나도 큰 인물이
될래요'(웅진시스템ㆍ전2권)다.

열 여덟부터 잡지 투고를 통해 시작한 만화인생이 벌써 40년. 그 중
대부분은 교양 역사만화였다.

"어린시절 할아버지 댁에서 읽었던 역사책의 감동이 아마도 나를 이
쪽으로 이끈 것 같아요. 그러고보니 70년대 후반부터는 계속해서
역사소재의 명랑만화만 그려왔어요."

인기 있다는 작가들이 한 달에 수십 권씩 생산하는 소위 '공장만화'로
빠져나갈 때도 그는 꿋꿋하게 '수공업적 만화'를 지켰다. 덕분에
돈과는 큰 인연이 없었고 폭발적인 인기를 끌지도 못했지만, 학부모나
학교 선생님, 그리고 어린이들의 꾸준한 성원이 그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그간 역사공부에 들인 정성도 만만치 않다. 이곳저곳서 사들인
역사책도 벌써 2000여권. "93년부터 올해 1월까지 한 7년간 성균관
한림원에 다녔어요. 사서삼경 등 13경, 한자공부 등을 했죠. 뭐,
학문적으로 파고들 능력은 없지만 역사만화 그리면서 그래도 아이들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는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서요."

나이보다도 약간 '지긋'해 보이는 외모지만, 작가와의 대화는 무척이나
젊다. 그가 스승으로 모신 길창덕 선생과의 추억, 만화문화상
상금으로 동료 작가들에게 술 사다가 거덜난 사연하며, 고우영,
박수동, 신문수 등 육순 언저리의 동료작가 모임 '수심회'의
즐거운 추억까지, 해맑은 눈으로 얘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분위기를 돌려, 요즘 젊은 후배 작가들의 작품이 어떠냐고 넌지시
물어보자 "세대가 다르니 만큼 우리가 왈가왈부 할 수 있는 자격은
없다"며 말을 아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게 자신 고유의 그림체와
캐릭터"라며 "일본 그림체 만큼은 모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충고했다.

체력이 마음을 따라주진 않지만, 잡지 등 매체가 허락된다면, 그는
논어, 맹자 등 사서삼경을 만화로 옮겨보고 싶다고 했다. 또 수십 년
작품활동을 하다 보니 "만화는 재능이 아니라 노력으로 그리는
것"임을 알겠다고도 했다. 떠나가면서 작가는 친목모임
수심회에 꼭 한 번 오라고 꼬드겼다. 환갑이 임박한
나이였지만 천진난만하게 웃는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개구쟁이
'요철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