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과 작품 일치시킨 큰 문인"의 문학인생 ##

“백구야 훨훨 날지를 말아라~.”

어깨를 들썩이며 흥을 돋우던 스승 황순원(85)옹의 노랫가락 ‘피앙 뎡거장’(평양 정거장)을 제자들은 더 이상 들을 수가 없다. 단편소설 ‘소나기’(1953)로 반세기 동안 독자들의 가슴을 적셨고 평생 고결한 지조로 일관했던 ‘문단의 큰별’은 14일 고요히 잠을 자듯 타계했다. 서울 사당동 자택에서 전날밤 평소와 다름없이 잠자리에 들었으나 그것이 곧 영면의 길이었다.

제자인 소설가 조해일씨는 “인간적으로나 문학세계에서나 선생님에게 가장 두드러진 점은 염결성”이라고 추모했다. 시인 정호승씨도 “세속에 물들지 않으면서 작품과 삶을 일치시킨 높은 품격과 기개로 작가정신을 내보인 분”이라고 그를 기렸다.

조씨는 황옹이 작년 말 제자들을 초청, 저녁을 내면서 “밀레니엄 버그 때문에 어떻게 될지도 모르니 이젠 세배를 오지 말라”고 했다면서, “제자들을 놓아 주려는 당신의 마지막 배려였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장남 황동규(62) 시인이 어렸을 때 “왜 우리집은 일본어를 가르쳐 주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내가 자식을 잘못 가르쳤다”며 통곡, 자식의 가슴에 국어사랑의 정신을 심었다는 황옹이었다.

소설가 고원정씨는 80년대 모 신문 신춘문예의 마지막 심사에 올랐으나, 심사위원이었던 황옹이 “내 제자니까 떨어뜨린다”며 그를 탈락시킨 일도 있다. 그는 “작가는 작품으로 말할 뿐”이라며 잡문이나 사회활동을 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했고, 70~80년대에는 “관직 제안을 받는 것 자체가 처신을 잘못하는 것”이라고 제자들을 훈계할 만큼 깨끗하고 꼿꼿한 자세로 일관했다.

1931년 시로 등단한 황옹은 그후 1982년 장편소설 ‘신들의 주사위’를 남길 때까지 거의 50여년 동안 주옥 같은 명편들로 한국 문학사에 지워지지 않을 족적을 남겼다. ‘별’(1941) ‘독짓는 늙은이’(1950) 등은 물론, 그의 대표작 ‘소나기’는 우리나라 단편소설의 백미로서 교과서에도 실려 독자들의 끊임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황옹은 1915년 평남 대동에서 출생, 일본 와세다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해방 직후 서울고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1957년부터 경희대에서 오랫동안 후학을 가르쳤다. 그는 최근까지도 서울 사당동에 있는 ‘풍미집’에서 제자들과 어울려 음식과 술을 즐길 정도로 건강했고, 지난 7월 초에는 서울 양재동으로 야유회를 다녀오기도 했다.

유족에는 부인 양정길(85) 여사와 시인이며 서울대 영문과 교수인 장남 황동규(62), 차남 남규(남규·60), 장녀 선혜(57), 삼남 진규(54)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영안실. 발인은 18일 오전 8시. (02)760-2011,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