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유맹사
천바오량 지음
이치수 옮김, 아카넷.
올해 서른여덟살인 중국학자 천바오량(진보량ㆍ陳寶良)은 참 엉뚱하다.
중화제국 5000년 역사를 '건달'의 변천사 중심으로 들여다보겠다는
'기상천외한 발상'부터 그렇다. 한 지역이나 한 왕조가 아니라 선진부터
청대까지 광대한 중국역사를 건달을 중심으로 통관해보겠다는 의욕에는
아연 말문이 막힌다. 하지만 그가 쓴 '중국 유맹사(流氓史)'를 넘기다
보면, 허황하게 보였던 그의 야망이 탄탄하게 실현됐다는 생각이 든다.
천바오량은 우선 선진 시기의 타민과 유협, 진·한대의 악소년,
위진남북조대의 무뢰배, 수·당대의 방시악소와 시정흉호, 송대의 파락호,
원대의 무적지도, 명대의 광곤과 날호, 청대의 무뢰곤도 등으로 불린
건달집단의 시대적 변화상을 파헤치는 데 주력한다. 청대 한 시기만
보더라도 상해의 백상인, 천진의 혼성자처럼 '지역구 건달'들이
다양했다. 한마디로 '건달'이지만, 각 시대에 따라 이처럼 각양각색으로
불렸다는 사실을 아는 것 만으로도 우선 흥미롭다.
이들의 범죄행위 또한 사기와 유괴, 인신매매와 도박, 살인 등 현재의
흉악범 뺨칠 정도로 다양하다. 송대에는 악질 변호사의 원류인 '송귀'가
판치고 다녔다. 전문적으로 소송을 부추기는 일에 종사하는 거간꾼인
이들은 직업단체이자 예비학교격인 '업취사'까지 운영했다. 청말에는
무뢰배들이 외국 선교사들의 배경을 이용, '서양깡패'로 행세했다는
기록도 심심찮게 나온다.
이런 건달집단은 마을에서 위세를 떨쳤고, 세월을 만나면 천하를
호령하는 군주로 성장했다. 한 고조 유방과 명태조 주원장은 건달에서
황제로 뛰어오른 대표적 인물이었다는 게 게 저자의 해석이다. 유방은
일을 망치는 못난 선비라고 유생들을 욕하면서 그 관을 벗겨 오줌을
누는 일까지 서슴지않는 왈패였다. 유방의 아버지 또한 젊은 시절
백정이나 장사치와 노닥거리며 닭싸움·공차기등 무뢰배가 하는 일을
즐겼다.
천바오량은 유맹이 출현하는 계기를 시대적 요인과 연결지어 설명한다.
진·한대에는 수재나 가뭄과 같은 천연재해와 가혹한 세금징수가
악소년을 양산했다는 것. 특히 송대 파락호 출현을 도시 발달같은 사회적
요인 못지않게 최고 통치자의 건달 성향에서 비롯됐다는 기상천외한
해석을 내놓는다. 송 태조 조광윤이 젊은 시절 도박을 하는 버릇이
있었고, 무뢰배 기질이 많았다는 것.
이 책은 빈둥거리는 것을 일삼고,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며,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르는 악한을 모두 유맹으로 규정하는 등, 사회과학적 접근법은
결여돼있다. 왕조 지배에 저항한 반란집단까지 전통 사서 기록을 비판없이
받아들여 '날건달'로 모는 유맹관은 문제가 있다.
하지만 각종 필기자료와 상주문 등 산더미같은 사료를 자유자재로
활용한 저자의 노력과 독특한 관심은 높이 살 만하다. 건달-무뢰한을
역사의 중심에 놓아본다는 경쾌한 발상을 적어도 우리 사학계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덕분에 딱딱하고 지루한 역사책 읽기에 싫증난 독자들은
왈패들이 설치고 다니는 저자거리같이 생동감있는 역사현장을 만날 수
있다. 천바오량은 서른살되던 93년 이 책을 출간했다.
◇중국 각시기 건달명칭
선진: 타민과 유협
진-한: 악소년
위진남북조대: 무뢰배
수-당: 방시악소와 시정흉호
송: 파락호
원: 무적지도
명: 광곤과 날호
청: 무뢰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