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의 손자 볼프강 바그너 (82)씨가 서울에 왔다.
바그너씨는 조부가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의 딸 코지마와 결혼해 낳은 지그프리트의 세째 아들. 리스트가 그의 외증조부다. 바그너씨는 할아버지 바그너의 오페라 작품에 정통한 연출자. ‘니벨룽의 반지’ 등 조부의 대표적 오페라만을 1876년 이후 해마다 공연하는 독일 바이로이트시 바그너 축제극장의 종신 예술감독직을 51년째 맡고 있다.
바그너음악 애호가들의 모임인 한국바그너협회(회장 김경원·사회과학원장) 초청으로 부인 구드룬(55) 여사와 함께 21일 서울에 온 바그너씨는 독일과 일본 합작으로 일본에서 막오르는 ‘니벨룽의 반지’를 참관하러 27일 도쿄로 떠난다.
“한국바그너협회와 바이로이트 축제극장 간 협력관계를 넓히려 왔습니다. 바그너협회는 1909년 생겨난 독일바그너협회를 시작으로 현재 서울을 포함해 세계 130개 도시에서 80여만명이 활동하고 있어요.”
22일낮 신라호텔 기자회견장에 아내와 함께 나온 바그너씨는 “서양에는 ‘처음 그리스도가 왔고, 다음 나폴레옹이 왔고, 그리고 바그너가 왔다’는 말이 있다”며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은 1876년 이후 1·2차 세계대전때 몇해만 빼고 바그너의 오페라만을 전문으로 공연하는 바그너음악의 메카”라고 소개했다.
바그너씨는 바이로이트에서 태어나 2차대전 때 문닫은 축제극장을 51년 형 비란트와 함께 재건했다. 지난 66년 형이 세상을 떠나자 극장을 홀로 책임지며 지난해까지 1020회 공연을 주도, 극장이 위치한 ‘그린힐(녹색 언덕)의 맹주’라는 별명을 얻었다. 98년에는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가 ‘월드컵 스리테너 콘서트’ 리허설을 이유로 바이로이트축제 ‘파르지팔’ 연습에 딱 한번 빠져야겠다고 알려오자 “그렇다면 오지말라”며 캐스팅을 취소하기도 했다.
지금 유럽음악계 최대 이슈의 하나는 바그너축제극장의 후계자 문제다. 바그너씨는 아내 구드룬이나 딸 카타리나를 후계자로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바그너재단 운영주체의 하나인 바이에른주 정부 등이 바그너씨가 전처와의 사이에 낳은 딸 에바를 유력 후보로 밀면서 갈등을 빚고 있다.
여기에 형의 딸 니케, 누나의 아들 비란트 라퍼렌츠(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재단 책임자)까지 후보군에 가세, 가문 전체가 속앓이를 하고 있다. 바그너씨는 “내가 운영권을 포기하기 않는 한 후계자 논의는 무의미하다”면서 “이 문제를 놓고 29일 바그너재단 관계자들과 협상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