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동 교수

김용옥 전 고려대교수의 KBS 논어강의 교재인 '도올논어'가 시라카와
시즈카와 오규 소라이 등 일본 학자들의 견해를 베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성균관대 유학·동양학부장 이기동 교수가 박사과정 제자인 배요한
목사와 함께 이번 주말 출간할 '도올 김용옥의 일본베끼기'(동인서원)가
그것. 지금까지 도올의 논어강의에 대해 몇가지 비판과 이론이 제기됐지만,
정통 유학자가 저서를 통해 정면 공격하고 나서기는 처음이다.

이 교수는 '도올 논어'가 공자를 무당 아들로 기술한 것부터가
시라카와 시즈카의 '공자전'을 베꼈다고 지적한다. "공자의 전기를
연구하는 대부분의 석학들이 다음과 같은 주장에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안씨녀는 무녀였다. 안씨집안은 무속과 관계된 집안이었다"(도올논어
1권 62쪽)며 공자를 무당아들로 단정하고 있다는 것. '도올 논어'는
공자가 음악에 정통한 이유는 어린 시절 굿할 때의 음악소리를 익히
들었고, 예를 좋아하는 것은 무당이 제사지내는 것을 늘 접했기
때문이라는 등 공자가 무당 아들이란 전제 아래 그의 사상을 풀어나간다.
하지만 이 교수는 시라카와의 '공자=무당 아들'설은 중국과 한국은
물론 일본 학계에서도 인정되지 않는 시라카와만의 학설이라고 주장한다.
시라카와도 "공자의 세계에 대해 '사기' 등에 기록된 이야기는 모두가
허구이다. 공자는 아마도 이름도 없는 무녀의 아들로서, 일찍이 고아가
되어 비천하게 성장했을 것이다" (공자전 23쪽)며 추측에 그치는데,
도올은 한걸음 더 나아가 단정적으로 얘기하는 것도 문제라고 했다.

'도올 논어'의 또다른 충격적 내용은 공자가 도(盜)라는 신분이었다는
주장이다. "공자의 무리는 '도'였다.…그러나 이것은 내 말이 아닌
장자의 말이다. 장자는 공자집단을 '도적의 무리'로 규정하는 데
서슴지않는다."(도올논어 1권105쪽). 이 교수는 이 또한 "공자도
망명중에는 '죽이는 자도 죄가 없다'는 신분이었다. 당시 말로 하면
'외도(外盜)'였다"(공자전 117쪽)는 시라카와의 주장을 옮긴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시라카와 역시 장자를 인용, 무덤을 도굴하는 유자
얘기를 쓰고 있다. 이 교수는 "진리의 세계를 우화를 통해서 표현하는
장자의 내용을 가지고 사실을 증명하는 데 동원하는 것은 넌센스"라고
지적한다.

이 교수는 "'도올 논어'에서 공자 사상의 핵심으로 인(仁)이 아니라
예(禮)를 꼽은 것이야말로 그의 학설이 일본 베끼기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증명하는 단서"라고 지적한다. "공자에게 있어 학의 대상은 물론
예였다. 그러나 공자의 학은 이 죽음의 예를 어떻게 삶의 예로
전환시키느냐의 문제였다"(도올논어1권 92쪽). 이 교수는 "형이상학적
개념이 결여된 일본인은 인 대신 예를 공자사상의 핵심으로 파악함으로써
공자사상을 왜곡시켰는데, 도올 역시 일본베끼기를 통해 공자사상의
핵심을 예로 봄으로써 공자사상을 왜곡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도올
자신도 "시라카와 선생의 정신세계는 공자라는 한 인간의 내면 깊숙히
들어와 있었다"(도올논어 1권 150쪽)고 극찬하거나 "오규 소라이의
'론고쵸오(論語徵)'로부터 받은 철학적 충격은 나의 내면세계를
굉동시키고도 남을 만한 그런 것이었다"(도올 논어 2권 290쪽)며 일본
사상의 영향을 언급하지만, 이 교수는 영향 정도가 아니라 도올의
사상체계 자체가 일본적 시각에 철저하게 빠져있다고 지적한다.

이 교수는 "「도올 논어」는 논평의 가치조차 없는 천박한 수준의
책이지만 돌팔이 약사가 엉터리 약을 시중에 유포시켜 많은 사람들이 그
약으로 인해 폐해를 입고 있다면, 의사로서 그 약을 분석해서 밝히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