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의 '세인트 폴 스쿨'과 버밍엄의 '킹 에드워드 스쿨'은
영국 주요 언론이 매년 발표하는 우수 학교 명단에서 최고의 사립학교로
꼽힌다. 450~500년의 역사, 매년 졸업생 3분의 1 이상을
'옥스브리지'(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를 합쳐서 일컫는 말)로 보내는
명문대 진학률도 자랑이지만, '완전한 인간을 만든다'는 전인교육의
전통이 학교의 명성을 뒷받침한다는 것을 쉽게 깨달을 수 있었다.
'킹 에드워드' 경제학 시간. 교사는 고2 학생들과 섞여 교실 뒤편에
앉아 있다. 2~3명씩 조를 짠 학생들이 발표를 시작했다. 주제는 '교통량
증가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 학생 하나가 "교통량을 줄이기 위해
기름값을 올리자"고 주장했다. 학생들과 똑같이 손을 들어 발언권을
얻은 교사는 "시장에 미치는 부작용이 크다"고 자신의 견해를 말했다.
유머를 섞어가며 배우들처럼 근사하게 발표를 마친 팀에는 큰 박수가
쏟아졌다. 팀 메이슨 교사는 "팀별 발표는 자기 표현력과 팀워크 정신을
기르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학교 영어 교사 게일 월스터씨는 수업을 컴퓨터실에서 진행하고
있었다. 열세 살짜리 남학생들이 '한여름 밤의 꿈' 속 주인공에게
'셰익스피어 스타일'로 편지를 쓰는 중이다. 정답은 없고 얼마나
나름대로 창의력을 발휘하느냐를 보는 시간이다. "보통 한 반 학생이
15명쯤 된다"는 월스터씨는 "모든 학생이 수업시간에 적어도 한 번
이상 발언하도록 신경 쓴다"고 말했다.
학생들에게 등수를 매기지 않는다. "모두 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지 누가 1등이냐는 따질 필요가 없다"는 게 학교측의 설명. 한
학생의 '세계문명' 과목 성적표를 보니 'C'라는 점수 아래
"비판적인 사고도 돋보이고 논술실력도 있지만 자기주장이 너무
강하다"는 평가가 붙어있다.
'킹 에드워드'에서 만난 앤드루 호터(12)군은 첼로와 콘트라 베이스
실력이 수준급일 뿐 아니라 수구, 수영팀에서도 활동한다. 호터군은
"다른 학교보다 공부 스트레스가 심하지만 스포츠건, 취미활동이건
학교 안에서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할 수 있기 때문에 다들 이 학교에 오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세인트 폴'에 다니는 닐 셰퍼드군은 교내 연극 '에브리맨' 출연을
앞두고 정신이 없었다. "방과 후에도 연습하지만 2시간이나 되는
점심시간에 주로 동아리 활동을 하지요." 이 학교에는 스포츠를 비롯해
영화·체스·요리 등 동아리가 60여개나 된다. 세인트 폴의 지리교사
데이비드 하우엘씨는 "학교가 학생들에게 철저한 팀워크를 강조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교생을 8개의 클럽으로 나눠 경쟁시킨다"며 "학교가
스포츠뿐 아니라 연극과 오케스트라 활동을 강조하는 것도 예술적인 정서
발달 못지 않게 협동심을 중시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남과 협동
못하는 학생은 사회에 나가서도 문제"라는 설명이다.
두 학교에서 돋보이는 것은 영국식 '투터(tutor·개인교사) 시스템'.
교사 1명이 적게는 학생 3~4명, 많게는 10여명을 맡아 입학~졸업까지
학교생활을 돌보고 책임진다. 개인교사들은 다른 교사들로부터 학생들의
1주일 수업계획서도 미리 받아 보며 학생들의 학교생활을 챙긴다.
'세인트 폴'의 애덤 오보일(16)군은 매일 아침 지도교사와의 만남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은 성적이 안 오르는 것 때문에 선생님과
시간관리에 대해 이야기했지요. 때론 선생님과 운동도 하고 비디오를
빌려보기도 합니다." 학생과 지도교사는 입학해서 졸업할 때까지
붙어지내며 부모 자식 이상으로 끈끈하게 맺어진다. '킹 에드워드
스쿨'의 로저 단시 교장은 "130여명의 졸업반 학생 모두의 이름과
특성을 꿰고 있다"고 자랑했다.
■英명문 사립학교 특징
영국의 사립학교는 학생들이 등교 후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수업받고
시험치고 입시준비를 하는 곳이 아니다. '킹 에드워드'나 '세인트
폴'은 학교라기보다는 '작은 세계'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사회를
보여주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
'세인트 폴'의 봄 학기 주요행사 일정을 보면 웬만한 대학도 모시지
못하는 유명 연사들의 연설일정이 빽빽하게 잡혀 있다.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영혼과 예술'에 대해 강의하거나 영국 제일의 심장 전문의가
학생들과 인공수정과 도덕적인 문제에 대해 토론한다. 이 학교 지리교사
데이비드 하우엘씨는 "로이드 뱅크 회장을 비롯해, 토니 블레어 총리도
모신 적 있다"며 "국회의원이건 각료건 우리 학교가 부르지 못하는
인사는 없다"고 말했다. 런던 최고 명문학교라는 명성 덕분이다.
'킹 에드워드'는 매년 학교에서 '진로·진학 박람회'를 연다. 일개
학교가 주최하는 행사인데도 영국 유수 대학과 기업체 관계자들이 최고의
학교가 배출할 미래의 인재를 점찍어 두기 위해 몰려온다. 진로 담당
교사인 던컨 체임블린씨는 "학생들의 대학 진학뿐 아니라 해외 자원봉사
수속을 적극 도와준다"고 했다.
영국 사립 고등학교 졸업생들은 대부분 대학 입학 허가를 받은 뒤 1년간
'gap year'를 갖는다. 세상 구경을 하면서 자원봉사도 하고 독립심을
기르며 사회를 경험하는 귀중한 시간이다. 학생들은 주로 개발도상국을
찾는다. 돈을 벌기는커녕 생활비를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한 학생은
"잠비아에서 1년간 영어·수학을 가르칠 예정"이라고 말했다.
영국 신문에는 윌리엄 왕자가 아버지 농장에서 일하거나 아프리카
사파리에서 자원봉사한다는 뉴스가 실리기도 했다. 학생들이 학교
울타리를 넘나드는 데 적극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봉사활동을 요구하는
대학 입시 제도 때문이다. 체임블린씨는 "좋은 의대를 가고 싶으면
고등학교 시절, 병원에서의 의료봉사를 해 두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킹 에드워드 스쿨
- 버밍엄 위치.
- 11~18세 남학생 880명 재학.
- 1552년 소년 왕 에드워드 6세 칙령으로 설립.
- 1년 학비 6000파운드.
- 교사 수 80명.
- '반지의 제왕' 저자 J R R 톨킨이 이 학교 출신.
- 한국인 학생 없음.
◆세인트 폴 스쿨
- 런던 위치.
- 13~18세 남학생 770명 재학.
- 1509년 에라스무스, 토머스 무어의 지인으로 당대 유명했던
인문주의자 존 콜렛이 설립.
- 1년 학비 1만파운드(기숙사비 제외).
- 교사 수 80명.
- 시인 존 밀턴이 이 학교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