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으로 돌아가느니 차라리 자살하겠다.” “(북으로) 송환 당한 후 혓바닥으로 용변기 구멍을 7시간이나 핥았다.” “몽둥이로 얻어 맞는 것은 예사고, 심지어 팔과 성기에 담배불 지짐을 당했다.”

자유세계로 탈출에 성공한 지금도 호주머니 안에 늘상 자살용 쥐약을 들고 다니는 북한 탈북자 박충일씨(23·가명 김운철· 본지 22일자 29면 보도 )는 “(북에서) 나에게 일어난 일을 생각만 해도 고통스럽고 끔찍하다”는 말로 북한의 탈북자 고문 실상을 전했다.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최근호에서 1999년 말 탈북했다가 러시아에서 체포돼 중국을 거쳐 북으로 송환된 뒤 지난 4월 또다시 북한을 탈출, 현재 태국 방콕에 머무르고 있는 박씨를 직접 만나 북한의 탈북자 고문 실태를 폭로했다.

함경도 출신인 박씨는 99년 12월 7명의 북한인(여성 1명 포함)들과 함께 두만강을 헤엄쳐 건너 중국으로 넘어가는 데 성공했다. 박씨 일행은 그러나 수일 후 러시아 국경 도시에서 러시아 국경수비대에 잡혀 중국으로 넘겨졌고, 중국 정부는 UN난민고등판무관(UNHCR) 등 국제 사회의 비난에도 불구, 곧바로 이들을 북한으로 강제 송환시켰다.

박씨는 이후 8개월간의 모진 고문으로 체중이 30㎏이나 빠지는 바람에 북한 안전요원들이 사망할 것으로 단정짓고 석방하자 지난 4월 다시 탈북, 일본계 자선단체들과 연결돼 목숨을 건지는 데 성공했다.

박씨는 99년 12월말 북한 보안당국에 넘겨진 후 청진의 함경도 보안부대 건물 지하 감방에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악몽은 시작됐다고 뉴스위크는 전했다.

“창문도 없는 지하실 감방에서 9명의 다른 정치범들과 생활했다. 방은 이·쥐·벼룩들로 가득찼다. 방안에는 용변을 보기 위한 조그만 구멍이 하나 있었을 뿐이다. 하루 세끼를, 한줌의 멀겋고 짜디 짠 옥수수죽으로 연명했다.”

그는 송환된 첫달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밤마다 고문을 받으러 무섭디 무서운 윗층으로 올라가야 했다. 첫날은 너무 심하게 구타를 당해 이빨 두개가 한꺼번에 부러졌다고 박씨는 털어놨다.

“고문 요원들은 내가 자유를 위해 행동한 것으로 범죄취급을 했다.” 고문단은 “왜 한국으로 가려고 했느냐”고 추궁하고, 대답이 시원찮으면 몽둥이로 때리고 팔과 심지어 성기까지 담배불로 지졌다고 박씨는 폭로했다.

박씨는 함께 송환된 동료 6명의 경우 “생사조차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감옥에 있는 동안 함께 송환된 6명 중 단 한 명만을, 그것도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모습을 봤을 뿐이었다.

그는 지금 김대중 대통령과의 면담을 간절히 원한다고 했다. “김 대통령에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북한 주민들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에게 속지 말라고 경고해 주고 싶다.”

( 홍콩=이광회특파원 santafe@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