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생활을 은퇴하고 귀국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지금도 독일에 가면
한눈에 나를 알아보는 팬들이 없지는 않지만 대부분은 이름만 기억할 뿐
상당히 변한 내 모습을 금방 알아 보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요즈음은
독일에 가면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일들을 가끔씩 겪게 된다.
지난해 프랑크푸르트에서 골프를 다시 하게 되었다. 클럽 사무실에서
짝지워준 초면의 다른 일행 3명과 함께 필드로 나갔다. 그들은 열심히
내기를 했다. 나에게는 관심도 흥미도 없이 적당히 무시하는 분위기였다.
9홀을 마치고 잠시 쉬는 동안 그들 중 한 명이 자판기로 달려가 마실
것을 뽑았다. 음료수 3개를 들고 왔다. 내 것은 없었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도 없이 자기들끼리만 마셨다. 아니 그것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어이가 없었다.
물론 독일에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던 터라 익숙지 않아서 더욱
황당했는지도 모른다. 그날 바로 그 골프장에서 발행하는 잡지 첫
페이지에는 내 사진이 실려있었고, 왕년의 차붐이 우리 골프장의 임시
회원이 되었다는 기사는 물론, 우리 골프장의 행사에 나와 시상도
해주었다는 얘기가 조금은 자랑스러운 듯 실려 있기까지 했었다.
지난달에 2주일간 독일로 휴가를 갔었다. 딜렌부르크 골프장의 회장은
이곳에 머무는 동안 자신이 초대하겠다며 1주일 내내 무료로 라운드를
하도록 했다. 너무 미안해서 마지막 날에는 '코리아 탄넨'이라는
소나무를 클럽하우스에서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기념 식수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경험하는 것처럼 축구선수 차붐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그들에게 다가갔을 때, 나는 콜라 한 병 나눠 마시기도 아까운 동양인일
뿐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그날 그들의 태도는 그간 내가 본 어떤
모습보다 솔직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김운용씨가 IOC회장 선거에서 고배를 마셨다. 보도에 의하면 사마란치의
영향력 때문이었다고 하기도 하고 백인 우월주의가 작용했다고 하기도
한다. 전혀 틀린 주장은 아니다. 우리는 그들의 아주 절친한 친구가 될
수 있다. 또 그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스타도 될 수 있다. 그러나
기득권을 가진 유럽인들이 자신들을 이끌고 갈 지도자로 동양인을
선택하기에는 정서적으로 무리가 있는지도 모른다. 또 세계
스포츠계에서의 동양은 아직도 베풀고 가르쳐야 하는 대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는 그것을 백인 우월주의라고
부르고 그것이 주요한 패인의 하나였다면 본다면, 나는 그것이 단순한
핑계만은 아닌, 매우 현실적인 시각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