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를 향해 열차를 달리고 있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7월31일 노보시비르스크를 통과할 때, 일부 언론의 예상과 달리 아버지
김일성의 생명의 은인이면서 의동생이기도 했던 야코프 노비첸코의
유가족을 만나지 않았다.

7년전에 사망한 노비첸코의 부인인 80세 노파 마리아를 비롯한 유가족이
노보시비르스크역에 나와 김정일을 기다렸으나, 20여분 정차해 있는
동안 김정일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노비첸코는 소련군 장교로 해방 직후 북한에서 근무했다. 1946년 3월1일
평양역에서 김일성이 3·1절 기념 연설을 하고 있을 때, 김일성을 향해
수류탄이 투척되자, 당시 경호업무를 담당하던 노비첸코가 몸으로 덮쳐
김일성을 보호했다. 덕분에 김일성은 무사할 수 있었으나, 노비첸코는
오른 팔을 절단하는 등 몸 5군데에 중상을 입었다. 그 후 노비첸코는
귀국하여 제대한 뒤, 노보시비르스크에서 약 300㎞ 떨어진 트라브노예
마을에서 평범한 농민으로 가난하게 살았다.

노비첸코 인생의 전환점이 된 해는 1984년. 김일성은 소련을 방문하면서,
소련 당국에 노비첸코를 찾아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김일성은
노보시비르스크에 도착, 공식 환영행사가 끝나자마자 귀빈실에 마련된
환영 파티를 거절하고 노비첸코를 만났다. 한 달 뒤 노비첸코는
북한으로부터 '노동 영웅' 칭호를 받았고, 부인 마리아와 함께 평양을
방문했다. 이때 김일성은 노비첸코에게 의형제 관계를 맺자고 제안했다고
노비첸코의 자서전인 '우정의 상징'에 적혀 있다. 북한측은
노비첸코에게 아파트와 많은 가전 제품을 사 주었고, 해마다 선물과
현찰을 보내, 노비첸코는 부유한 노년 생활을 보냈다.

그런 노비첸코의 유가족들에게, 김정일 대신 한 북한 관리가 기차에서
내려 선물 가방을 전해주면서, 귀국길에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김정일의
말을 전했다고 한다.

(모스크바=황성준특파원 sjhwang@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