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최고 화제작으로 손꼽히는 ‘무사 ’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정우성(사진 위)주진모와 장쯔이

## 호화 캐스팅…70억짜리 대작, 거칠고 박력있는 전투장면 ##

새해가 열리는 시점에서, 2001년 최고의 화제작은 '친구'가 아니었다.
김성수 감독의 '무사'였다. 9월7일 개봉을 앞둔 이 작품은 70억원에
이르는 엄청난 총제작비, 안성기 정우성 주진모에 '와호장룡'의 중국
여배우 장쯔이까지 가세한 화려한 캐스팅,
김성수-조민환(프로듀서)-김형구(촬영)-이강산(조명)-정두홍(무술)에
이르는 일급 제작진으로, 2000년 여름 촬영에 들어가기 전부터 관심을
모아왔다. 2~3년전만 해도 불가능했을 규모의 이 초대형 프로젝트 뒤엔
위력을 더해가는 한국영화의 자신감이 담겨 있다.

'무사'는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간첩 혐의로 귀양길에 오르게 된
고려 말 무사들 이야기다. 죽음의 행군이 계속되면서 장수
최정(주진모)과 노비 출신 무사 여솔(정우성)이 갈등을 빚으며 양축을
구성하고, 궁술의 명수 진립(안성기)이 무게 중심을 잡는다. 이들은
원나라에 납치되어 가던 명의 부용공주(장쯔이)를 구출한 뒤, 추격에
나선 원나라 군사들과 계속 전투를 벌인다.

27일 시사회에서 처음 공개된 '무사'는 이제껏 충무로에서 접할 수
없었던 새 영상을 보여준다. 온통 붉은 모래 뿐인 사막을 비롯, 영화에
담긴 중국의 광활한 대자연은 인물들을 점으로 표현할 때조차 고향에
돌아가려 분투하는 사람들의 막막한 심경을 효과적으로 그려낸다.

'무협 영화'로 '무사'에 대한 관객 관심은 액션에 있을 것이다.
'무사'의 액션은 사실감에 방점이 찍혀 있다. 김성수 감독은
익숙하고도 멋진 무술영화의 볼거리 제공 대신 거칠고 박력있게 액션
디테일의 충격을 전달하는데 주력했다. 클라이맥스인 종반부
토성의 최후 일전은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 모두의
불타오르는 내면 속으로 강력히 끌어들이며 처절한 '몰살의
스펙터클'을 보여준다. 피아 조차 구분하기 힘들게 살육의 처참한
광경을 담아낸 액션 장면들은 전장의 공포와 혼돈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빡빡한 클로즈업 위주로 쉴 틈 없이 이어지는 액션
장면들은 인물 동선 파악조차 쉽지 않아 어리둥절해지기 쉽다.
강렬하지만 통쾌하진 않다고 할까.

이 영화의 캐릭터들은 조연급 하나하나에까지 창작자의 애정이 담뿍 담겨
또렷이 살아 있다. 그러나 캐릭터에 강한 성격을 부여하려는 노력은
뜻하지 않게도 드라마를 상투적인 것으로 만들어냈다. 인물들은 투구나
삿갓 혹은 베일로 얼굴을 가린 채 하나같이 신비스럽게 등장하고,
한결같이 장엄하기 이를 데 없는 최후를 맞으며 퇴장한다.

한두번의 비장한 죽음은 대중 영화에 탄력 있는 극점을 만들지만, 예외
없이 모든 인물에 적용되는 비장한 죽음의 연쇄는 이야기 자체를
구태의연하게 만들 수도 있다. 갈등의 매듭이 엮이고 풀리는 상황
묘사나, 갖가지 죽음을 통해 의미의 연결고리를 빚는 방식은 너무나
기계적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잘못 만든 캐릭터는 가장 큰 비중을 둔 여솔이다.
시종일관 '카리스마'를 내세우는 이 캐릭터는 고비마다 돌출적
행동으로 드라마의 개연성과 리듬을 해친다. 정우성은 청춘스타로 충분히
멋진 모습을 보여주지만, 고개를 숙인 채 눈을 치켜뜨는 표정으로만
대변되는 평면적 캐릭터를 연기해 아쉬움을 남긴다.

극 초반, 세상 밖으로 유배된 뒤 생존 의지로 똘똘 뭉쳤던 매력적
인물들은 공주가 끼어들면서 장르적 화술의 뻔한 관성에 희생되어가다가
감상적으로 두껍게 덧칠된 다른 가치들에 기꺼이 몸을 던지며 사막의
모래바람 속으로 흔적 없이 사라진다.

'무사'는 무협 영화의 익숙한 재미를 즐기기엔 액션이 지나치게
빡빡하거나 사실적이고, 그렇다고 역사의 뒤안길에 묻힌 이야기의
리얼리티를 경험하기엔 드라마가 너무나 관습적이다. 제작비에서
배급까지 급속히 '크기'를 키워왔던 한국 영화는 이제 '규모의
경제학'을 생각해봐야 할 상황에 놓인 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