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27일 개봉)를 보러가실 분들을
위한 조언 몇가지. 관람료 깎아준다고 오전에 시작하는 조조할인 첫회를
찾지 말고, 가급적 밤 늦게 끝나는 마지막 회나 주말 심야상영회를 노릴
것. 매번 함께 영화를 보러가는 연인 대신, 어린시절을 함께 기억하는 옛
친구와 함께 극장을 찾을 것. 식사를 조금 적게 하고 영화를 본 뒤
가능하면 술 한잔 걸칠 것. 단 노래할 수 있는 곳, 특히 밴드가 나오는
술집은 절대 피할 것.
남성 밴드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불경기로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한 채
이곳저곳을 떠돈다. 이들은 리더 성우(이얼)의 고향 수안보의 한 나이트
클럽에서 새로 일을 시작하지만 여러 이유로 멤버 교체를 겪는다. 성우는
그곳에서 소년 시절 짝사랑했던 인희(오지혜)가 남편과 사별한 뒤
억척스런 야채장수로 변해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일출은 멀게만 느껴지는 새벽
두시, 고된 야근을 끝내고 빈 속에 쏟아 붓는 깡소주 같은 영화다.
대중적 재미도 만만치 않지만 결국 보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후벼파고마는 이 영화는 지방 나이트클럽을 전전하며 퇴락해가는 밴드
멤버들의 긴 그림자를 쓸쓸하게 담아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세월을 알고, 꿈을 알고, 무엇보다 현실을 아는
작품이다. 어린시절 음악을 가르쳐준 학원 원장의 폐인 같은 현재
모습과, 성우 밑에서 새로 음악을 배우려는 청년 기태의 존재는 그대로
주인공의 미래와 과거에 겹치면서 피로한 삶의 세 시제를
완성한다. 감독은 한 무대에서 이별을 고하는 마지막 연주 장면에서 이
영화를 시작하고, 새로운 무대에 오르는 첫 연주 장면으로
끝맺음함으로써 영원히 뿌리를 잃은 채 떠돌아야 하는 인물들의 삶을
역설적인 순환 고리처럼 만들어냈다.
조안 제트 앤 블랙하츠(Joan Zett & Black Hearts)의 '아이 러브
록큰롤'에서 김수희의 '애모'까지, 이 영화에서 쉴새없이 등장하는
음악들은 그 자체로 알찬 볼거리와 들을거리를 제공하는 동시에 인물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선명한 상징으로도 활용됐다. 자연스럽게 배역 속으로
녹아 들어간 배우들의 좋은 연기도 눈에 아프게 박힌다. 데뷔작 '세
친구'에서도 주류에서 밀려난 아웃사이더들에 대한 관심을 보였던
임순례 감독은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음악의 들뜬 열정과 삶의
가라앉은 관조, 약간의 유머와 대중적 화술로 풀어내 재미와 감동을 함께
지닌 작품으로 만들어냈다.
단란주점에서 반주하다가 술취한 손님의 요구에 따라 알몸으로
'아파트'를 부르던 성우가 모니터 화면을 보면 거기엔 꿈많던
고교시절, 해변을 알몸으로 질주하던 자신의 모습이 원경으로 담겨 있다.
단란주점의 답답한 앵글과 시원한 바닷가 롱샷(멀리찍기)을 효과적으로
대비시킴으로써 꿈과 현실을 맞세우는 식의 이 영화 대조법이 빚어내는
정서적 파장은 '박하사탕'이나 '파이란'같은 영화들처럼 강력하다.
영화를 보고나서 정말 술이라도 한잔 걸치게 되면, 밴드나 노래방 기기가
없어도, 당신은 마지막 장면에서 처연하게 울려퍼졌던 심수봉의
'사랑밖엔 난 몰라'를 읊조리지 않을 재간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