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마지막 관문만을 남겨두고 있었는데….”
25일 오후 올해 사법연수원 2년차인 이모(여·33·연수원 31기)씨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강남성모병원 영안실. 꿈꿔왔던 법복 대신
수의를 입고 있을 동기의 영정을 앞에 두고 동기생들은 할 말을 잃은
듯했다.
명문대 영문과를 졸업한 이씨가 결혼 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사법시험에 도전한 것은 5년 전. "남보다 늦은 출발이었지만 2년 만에
합격해 식구들 모두가 좋아했다"고 한 친지는 전했다.
하지만 바라던 연수원 '입성' 뒤에는 또 다른 경쟁이 기다리고
있었다. 최근 들어 사시합격자 수가 매년 100명씩 늘어나면서 연수생들
간의 경쟁은 이미 치열해질 대로 치열해져 있었던 것. 2년 뒤 수료 때
판·검사 임관을 비롯한 진로가 연수원 성적과 직결되며, 판·검사로
임관되더라도 수도권에 남기 위해선 점수가 더 좋아야 하기 때문에
700여명의 동기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새로운 '레이스'에 뛰어드는
분위기였다. 한 동기생은 "사법시험 준비 기간 때보다 오히려 더 공부에
목을 매야 할 정도"라고 했다.
성적이 상위권에 속했던 이씨도 수료를 앞두고 마지막 시험에 사력을
다했다. 열흘 동안 하루 걸러 계속되던 시험 기간 중 세 번째 시험이
있던 12일 오후 6시. 8시간 동안 계속된 '형사재판실무' 과목의 답안을
작성한 뒤 교실문을 나섰던 이씨는 화장실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뒤늦게 이씨를 발견한 동기생 등이 병원으로 옮겼지만 24일 밤 이씨는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
동기생들은 이씨가 "하루 7~9시간씩 진행되는 시험과 경쟁의
'사투'에서 희생된 셈"이라며 고개를 떨궜다. 이번 시험 기간
중 또 다른 여자 연수원생 한 명도 시험 도중 쓰러졌다 응급조치를 받고
깨어나기도 했다. 연수원생 박모(33)씨는 "시험 기간이면 점심시간도
아까워 건너뛰는 사람들이 반 이상"이라면서 "우리나라는 학교시절부터
직장생활에 이르기까지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합니까"라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