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책길로, 텃밭으로… 이른 아침부터 ‘활기 ’##
조성근(79) 전 건설교통부장관은 오전 6시 산책으로
실버타운에서의 하루를 시작한다. 조씨가 아침마다 걷는 산책로에는
계단이 하나도 없다. 경사도 5도를 넘지 않게 완만하고, 바닥에는 재질이
푹신한 우레탄 처리가 되어 있다. 노인들이 걷는 데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조씨는 경기도 용인시 기흥읍에 있는 실버타운 '노블 카운티'에 산다.
지난 63년 육군 준장으로 예편해 건교부 장관, 현대건설 사장 등을
역임한 조씨는 3년 전 부인이 죽은 뒤에는 막내아들과 함께 살아왔다.
하지만 지난 5월 노블 카운티가 문을 열자, 자식들 만류를 뿌리치고 이
곳에 입주했다. "이 눈치 저 눈치 볼 필요 없이 내 나이 또래 사람들과
어울려 여생을 즐기고 싶었어."
3.5㎞ 길이의 실버타운 산책로는 오전 7시쯤에 가장 북적댔다. 다정하게
손잡고 걷는 노부부도 있었고, 삼삼오오 어울려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서너 명은 텃밭에 쪼그려 앉아 고구마 줄기를
열심히 다듬고 있었다. 실버타운에서 1인당 1평씩 나눠준 텃밭에는 입주
노인들이 심어놓은 고추나 배추, 무가 빼곡이 자라고 있었다.
자녀들이 있음에도 불구, 실버타운행을 선택한 노인들은 '함께
늙어가는 동료가 있어 시간 보내기가 훨씬 수월하다"고 입을 모았다.
노블 카운티에도 문화강좌, 동아리모임, 봉사활동 등 노인들이 바쁘게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소일거리'들이 많이 마련돼 있었다.
조씨는 이 달에 서예강좌를 듣고 있다. 예서체로 '천하수평
망전필위(천하가 태평할 지라도 전란을 잊으면 위기가 닥친다)'를
멋지게 쓰는 게 목표다. 서예강좌 말고도 한국무용·오색한지공예 등
문화강좌가 100여개 개설돼 있다.
마음맞는 노인들끼리 모여서 당구나 배드민턴을 치고, 주중 골프를
즐기는 동호회도 있다. 합창 동호회 멤버는 60여명이나 된다. 이런
동호회가 12개쯤 된다.
공식적인 동호회는 아니지만 홀로 된 할아버지끼리 정담을 나누는 모임도
있다. '노총각 공화국'이라고 애칭이 붙은 비공식 모임이다.
노인들은 실버타운 내에서 서로를 돕는 봉사활동도 한다. 조성근씨는
'웰컴 커미티(welcome committee)' 회장을 맡았다. 새로 입주하는
노인들에게 실버타운 곳곳을 안내하고, 친구들을 소개시켜 주는 일이다.
이 실버타운에는 이한빈 전 부총리도 입주해있다. 이 부총리 내외는
실버타운 내 도서관에서 책을 정리하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주로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낸다.
노블 카운티에는 10월 중순 현재 180가구의 노인 가정이 있다. 180가구
중 70%는 부부가 함께 입주한 '2인 가구'다. 나머지 30%만 할아버지나
할머니 혼자 사는 '나홀로 가구'이다.
이 곳은 노인들끼리 살아도 전혀 불편함이 없도록 편의시설과 의료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매끼 식사 때마다 한식 위주로 서로 다른 2개의 메뉴가
제공되고, 이불 등 큰 빨래와 바닥 청소는 모두 실버타운 운영회사가
대신 해준다. 간단한 옷가지들은 가구마다 비치된 건조형 세탁기를
이용해 노인들이 쉽게 세탁을 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또 실버타운 내
스포츠센터에는 수영장·게이트볼장·스쿼시장·당구장 등 각종
운동시설이 골고루 갖춰져 있다.
실버타운에는 의사 2명과 간호사가 24시간 상주하고 있다. 노인들이
건강에 이상에 생길 경우, 각 방 침대와 욕실에 달려있는 비상벨만
누르면 즉각 응급조치를 받을 수 있다. 재활 전공 의사와 치과의사도
격일로 실버타운을 방문, 진료한다.
만약 치매에 걸리거나 거동이 힘들어지면 너싱홈(일종의 호스피스
시설)으로 옮겨진다. 이 곳에서는 간병인이 하루씩 교대로 노인 한
사람을 24시간 간병한다. 노인들은 실버타운을 택하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로 바로 이런 호스피스 기능을 꼽고 있다.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임종을 맞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시설이 좋은 만큼 비용도 만만치 않다. '노블 카운티'의 경우,
부부가 함께 입주하면 36평형(실평수 17평)을 기준으로 보증금 3억원에
월 191만원, 혼자 입주하면 보증금 3억원에 116만원씩 낸다. 너싱홈으로
옮기면 보증금 1억원에 월생활비 220만원으로 입주 조건이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