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월드컵에서 한국과 함께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팀은 단연
세네갈이다. 그러나 인구 900만명에 1인당 국민소득 500달러를
밑도는 서아프리카의 소국(小國) 세네갈을 아시아 동북단에 있는
한국이 제대로 알 기회는 없었다. 유럽에서 아프리카까지 횡단하는
자동차 경주대회 '파리-다카르 랠리'가 끝나는 다카르가 바로
세네갈의 수도라는 지리학의 상식도 모르는게 어쩌면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다카르에서 3㎞ 떨어진 곳에 화산섬 '고레'가 있다. 명칭은
1776년 이곳에 처음 '노예의 집'을 세운 네덜란드 사람들이
붙였다. 네덜란드말로 '아름다운 항로(Goode Reede)'의
약칭이라는 설도 있고 네덜란드에 있는 섬 '괴레(Goeree)'에서
따왔다는 설도 있다. 이 섬이 2차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버금가는 인류사의 비극이 자행됐던 장소임을 안다면 여기에
'아름답다'는 수식어를 붙인 당시 유럽인들의 가학(加虐)심리에
놀라게 된다.

유럽인 중에 처음으로 이 섬에 발을 디딘 사람은 포르투갈 탐험가
디아스였다. 그 때가 1444년이다. 그후 아메리카행 항로가 개척됐고
16세기 중엽부터 19세기까지 300여년간 고레섬은 남북미로 팔려간
흑인노예의 수출항으로 이름을 날렸다. 이곳에서만 100만명 이상이
미지의 세계로 떠나야 했다. 그후 이 땅의 주인은 네덜란드, 영국,
다시 네덜란드, 프랑스를 거쳐 1960년 마침내 세네갈의 땅이 됐다.

1992년 이곳을 찾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노예무역을 방조한
가톨릭교회의 과오를 반성했다. 1998년에는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도
이곳을 방문해 노예제는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흑인노예수출
이야기를 생생하게 재현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아미스타드'가 고레섬에서 시작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이너마이트 몇 개로 날려버려도 시원치 않을 이 지긋지긋한
치욕의 섬을 세네갈정부는 1975년 문화재로 지정했다. '처녀의 방',
'어린이 방', '반항자의 방', '대기실' 그리고 마침내
팔려나가면서 이 섬을 떠나게 되는 '돌아올 수 없는 문'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노예의 집'은 인간학대와 노예제의 부끄러운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세네갈 골잡이 디우프가 쏘아대는 슛의
힘에는 이런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