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정의 만화 『호텔 아프리카』는 우라사와 나오키의 섬세한 그림과
시미즈 레이코의 우수(憂愁)를 합쳐 놓은 것 같은 수작이다. 박물지적인
면에서 보자면 우라사와 나오키의 「마스터 키튼」보다는 떨어지지만,
삶의 일상에서 건져내는 섬세한 이해는 「마스터 키튼」에 비할 바
아니다. 그림으로 치자면 시미즈 레이코의 등장 인물이 주는 우수보다 더
깊다.
나는 처음 이 만화의 제목을 보면서 좀 의아했다. 호텔 이름으로
'아프리카'라는 이름은 러브 호텔에도 잘 쓰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제목은 나를 끌어 당겼다. 거기에는 뭔가 위험한 환각과
자기파멸적인 분위기가 있을 것 같았다. 요 며칠 위와 장이 동시에
고장나는 바람에 술과 담배를 끊고 있던 내겐 뭔가 좀 흐릿한 것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사실 사물이 너무 명징하게 보이는 것도 탈이다.
쓰린 위를 붙잡고 만화방의 서가를 건성건성 열람하다가 나는 이 만화
『호텔 아프리카』를 그냥 스쳐 지나간 뒤 다시 돌아와 손에 잡았다. 몇
해 전에 본 만화지만 지금 나에게는 『호텔 아프리카』의 분위기가
필요했다.
『호텔 아프리카』는 엘비스라는 청년의 회상에 바탕을 두고 어린
엘비스의 시각에서 본 세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회상이지만 이 만화는
철저하게 어린 엘비스의 시각에서 구성된다. 동시에 이 만화에서
화자(話者)는 이야기의 발설자인 동시에 이야기 자체이다. 화자인 흑인
청년 '엘비스', 그리고 그와 룸메이트인 '에드', 이 둘의 여자
친구인 '쥴'은 화자의 시점에서 벗어나 있으면서 화자의 이야기에
포함된다. 만화는 주로 '검은 엘비스' 가족이 운영했던 호텔
'아프리카'와 그곳을 거쳐간 손님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이 추억들은
다시 '엘비스'의 현재인 '쥴'과, '에드'의 이야기에 포함되면서
회상의 시점을 지워버린다. 결국, 과거와 현재가 정교한 짜임을 이루면서
추억하는 여기와 추억의 저 곳이 흐릿해 진다.
더군다나 박희정의 그림을 보라. 순정만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투적인 장식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시미즈 레이코가 눈과 눈썹
사이의 명암을 강조하면서 인물의 우수를 표현한다면 박희정은 눈동자와
양쪽 꼬리가 약간 처진 입 모양을 강조하면서 동성애의 운명과
고통스러운 사랑의 열정, 그리고 질투와 고독을 표현한다.
(함성호/시인·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