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존심을 지킨 한 조선인의 회상
(최기일 박사 자서전/생각의 나무/2만원 )
미국 매사추세츠 주 뉴턴이란 도시에 사는 최기일(崔奇一·80) 전 우스터
대학 경제학과 교수의 고향은 평안북도 삭주군 외남면 대관동.
포목상이자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유복하게 자라온 그는 천만뜻밖에도
이제 만리타향에서 뼈를 묻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삶의 궤적 아래로 한반도 현대사가 흐른다.
그가 쓴 '자존심을 지킨 한 조선인의 회상'은 격동의 한국 현대사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이북 출신 지식인의 삶을, 어느 역사학자도 묘사하기
힘들 만큼 놀라운 기억력으로 기록한 자서전이다.
최씨는 먼저 자신의 고향에 대해 이야기 한다. 당시 평북 지역은 기독교
유입과 이에 따른 전통적인 효 사상과의 갈등, 여름 낮과 겨울 밤의
무료하고 자극 없는 삶에 익숙한 조선인과 그런 사람들에게 '시간은
돈'이라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가치를 강조하는 일본인 사이의
불협화음, 황국신민 교육에 혈안이 된 일제와 그에 타협하거나 반항하며
다양한 삶의 궤적을 그려내는 조선 식민지 사람들의 모습 등이
입체적으로 펼쳐진다. 부모와 각별한 정이 흐르던 어린시절 이야기와
버무리며 들려주는 1920~30년대 평안북도의 풍경 묘사는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를 읽을 때 같은 아련한 문학적 흥취로까지
다가온다.
1부가 자신의 출신지에 대한 향토지 성격의 기록이라면, 2부는
신의주고보와 게이오대학 유학 시절, 김준엽, 장준하 등과 사귀며
민족의식을 키워가게 된 과정을 그린다. 그는 신의주고보에서 "우리는
너희가 위대한 개인이 되기보다 착한 일본신민이 되기를 바란다"는
일본군 대령의 연설을 들으며 황국신민화 교육의 본질을 꿰뚫어 봤으며
그 앞잡이인 일본인 교사들을 증오했다고 회상한다. 일제의 징병에
거부하다 사실상의 강제노동형에 처해진 뒤 2년 만에 그는 우리 대다수
지식인이 그랬던 것처럼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해방을 맞는다.
3부는 근면과 성실로 청부를 이룬 아버지를 지주라는 이유로 숙청해버린
공산주의에 대한 환멸, 해방된 조국의 미래 건설에 동참하기 위해 이승만
박사가 기거하던 돈암장에 공보비서로 들어간 사연, 독선과 아집으로
일관했던 이 박사에 대한 실망, 그로 인해 결행한 미국유학, 한국
민주화의 희망인줄 알았던 야당 지도자 김대중씨에 대한 환멸 등이
흥미롭게 이어진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혹독한 이
박사와 DJ에 대한 평가이다. 그는 이 박사가 어떤 종류의 토론에도
익숙하지 않은 사람인데다 한국의 정치 상황에 대해 무지에 가까울 만큼
아는 게 없었고, 그래서 기자회견조차 기피했고 언론을 등한시했다고
지적했다. DJ에 대해서는 동물적 권력욕을 가진 사람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두 사람에 대한 평가가 너무 개인적 경험에 국한돼 있다는
점은 독자의 세밀한 취사선택을 요구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자서전이나 회고록은 아직도 불모에 가깝다. 또 그런 책은
아무나 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인식도 강하다. 그러나 누구의 인생인들
소중하지 않은 게 있을까. 꼬장꼬장한 자존심으로 자기 인생의 어느
시기도 헛되이 보내지 않은 '비범한 보통사람'의 절절한 생의
기록이기에 어떤 회고록보다 피부로 와닿는 감동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