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으면 이보다 더 영광스러울까. 지난 18일 뉴질랜드
웰링턴에서 열렸던 '반지의 제왕-두개의 탑' 개봉 행사에서 피터 잭슨
감독(41)은 모든 것을 얻은 듯 했다. 웰링턴 중심가 코트니 플레이스의
엠버시 극장 앞에 몰려든 팬들은 '우린 피터를 사랑해요' '피터,
뉴질랜드의 제왕' 같은 플래카드를 흔들며 그의 이름을 연호했고,
주최측은 대형 멀티비전으로 10여분간 '국민 감독'이 된 그에게 존경을
바치는 국민들의 말을 이어붙인 영상물을 상영해 끝내 피터 잭슨을
울렸다.
"사람들은 제가 자랑스럽다지만, 저야말로 뉴질랜드가 자랑스럽습니다.
뉴질랜드의 빼어난 자연과 뛰어난 영화 인력이 아니라면 이 영화를
제대로 찍지 못했을 겁니다." 19일 웰링턴 시내 인터 컨티넨탈 호텔에서
단독으로 기자와 만난 잭슨은 "국립공원처럼 엄두도 내기 힘들 장소도
정부가 먼저 주선해 줬고, 아무리 작은 마을에서 촬영해도 주민들이
진심으로 도와줬다"고 감사를 표했다.
그는 "무엇보다 '반지의 제왕'을 통해 영화 고유의 매력을 살려낸 것
같아 자부심이 생긴다"고 말했다. "캐릭터에 깊이를 불어넣는 방법으로
드라마를 강조함으로써 괴물과 성(城)을 대충 등장시켜 어슷비슷한
작품을 양산해온 판타지 장르를 혁신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1년반 동안 3부작을 한꺼번에 찍는 '영화사상 최대 도박'을 성공시킨
그는 "이야기의 통일성을 생각하면 모험을 할 수 밖에 없었다"며 "난
이 시리즈가 3시간짜리 3편이 아니라 9시간짜리 1편이라고 생각한다"고
못박았다.
원래 그는 '피블스' '데드 얼라이브' 등 피범벅 공포영화 속에
기괴한 유머를 섞어내는 스플래터 무비의 대표 감독이었다. "통념과
달리 저예산 영화가 훨씬 더 찍기 어렵다"는 그는 "블럭버스터는 많은
문제를 돈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저예산 영화는 조금만 잘못되면
재앙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한다. " '킹콩'을 보고 열살 때 감독이
되기로 결심했다"는 그는 아버지가 사준 8㎜ 카메라로 10대 시절 내내
단편 영화들을 찍었다. 독학으로 영화를 익힌 그는 방송국에서 일하다
26세 때 장편 데뷔작 '고무인간의 최후'(Bad Taste)를 찍었다.
96년에는 '프라이트너'로 할리우드에 진출했다.
그가 데뷔작을 찍었을 때 들인 돈은 불과 12만 달러. 이제 잭슨은 그
2500배에 달하는 3억 달러의 블럭버스터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만들었다. 그는 "다음 작품으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저예산 영화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웰링턴(뉴질랜드)=이동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