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서른살 흑인 청년 데이먼드 존은 뉴욕 퀸즈의 집을 저당잡혀
10만달러를 빌렸다. 그 돈으로 집 절반을 모자공장으로 개조하고, 나머지
절반은 일을 도와줄 동네 친구들의 합숙소로 꾸몄다. 그는 넝마처럼
헐렁한 힙합 캐주얼 의류를 만들면서 '후부(FUBU)'라는 브랜드를
붙였다. 'For us, by us'의 약어로 '우리(흑인)를 위해 우리가 만든
옷'이라는 뜻을 담았다.
10년을 갓 넘긴 지금, '후부'는 미국 힙합 캐주얼 시장을 호령하는
최고 브랜드가 됐다. 흑인 열에 하나꼴로 입을 만큼 인기지만 그렇다고
싸구려도 아니다. 고급 쇼핑몰에 즐비한 의류매장들 가운데서도 '후부'
매장은 가장 비싼 축에 든다. 모자 하나에 50달러, 티셔츠 한장에
100달러가 넘으니 조무래기들은 쉬 집어들 엄두를 못낸다.
'후부'가 세계 60여개국 매장에서 올리는 연간 매출은 10억달러에
이르고, 브랜드 가치만 6억달러로 평가된다. CEO 데이먼드 존은 '후부는
옷이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이라고 으스댄다. 뉴욕 뒷골목의 가내공장을
급성장시킨 주역은 한국 '상사맨' 이만수(李萬洙)씨다. 95년 모 대기업
뉴욕지사장으로 부임해 보니 섬유영업부문이 파산지경이었다. 그는
팔만한 브랜드가 없다면 브랜드를 발굴해 키우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했다.
96년 '후부'를 발견한 그는 데이먼드 존을 만나 파트너를 자청했다.
자금을 대 번듯하게 회사를 세우고 마케팅을 제대로 전개하면서
'후부'는 승승장구했다. 흑인 래퍼 LL 쿨 J와 매직 존슨, 팀 하더웨이
같은 농구 스타들이 다투어 '후부' 팬이 됐다. 이씨는 이사가 된 지
3년 만인 99년 전무로 단숨에 두 단계 승진을 하더니 엊그제 인사에서
사장에 오르는 초고속 승진으로 다시 화제에 올랐다.
기업환경이 갈수록 급변한다. 디지털화 진전, 소비패턴 변화로
주력제품 세대교체도 급속히 이뤄지고 있다. VCR에서 DVD로,
브라운관에서 FPD(평판 디스플레이)로, 승용차에서 레저용 다목적
자동차로…. 제품 세대교체를 기회로 활용하는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
간에 격차가 확대되는 세상이다. 하지만 그럴 때일 수록 퇴물사업에서
가능성을 읽어내는 역(逆)발상, 진흙 속에서 진주를 찾아 내는 안목이
'후부' 사례에서 빛난다. 올해 경제상황이 걱정스럽다며 '여건'만
탓하는 많은 비즈니스 맨들에게 좋은 부추김이 될 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