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초부터 4월 말까지 이라크 전쟁 종군취재를 마치고 워싱턴으로 돌아왔습니다. 종군기자에서 특파원으로, 전쟁터에서 일상으로 돌아왔지요.
제가 워싱턴을 비운 사이 일어난 일들을 점검하고 뉴스진도(?)를 따라잡느라 철지난 잡지와 신문을 뒤적이다보면, 정말 이라크에 있었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돌이켜 보면 시시하지 않은 일이 없지요. 제가 무사히 돌아온 후에야 다 별 일 아니었던 것처럼 느껴지지만, 미국과 이라크의 군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통계조차 잡히지 않을 정도로 수많은 이라크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었고 많은 종군기자들이 이 전쟁취재 도중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라크에서 돌아와 제 방에 놓아둔 두개의 상자를 열었습니다. 하나는 제 저금통장과 몇가지 서류가 들어 있는 것으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자리에 놓아두었더랬습니다. 다른 하나는 일기장과 제 메모수첩 따위가 들어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 상자를 밀봉한 후 ‘누군가 이 상자를 저 대신 정리해야 한다면 열지 말고 그대로 태워주세요’라고 써두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버’했다 싶기도 하지만 그때는 정말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미국의 24시간 뉴스채널들은 요즘도 쉬지 않고 이라크발 기사를 보냅니다. 조선일보 기자들도 여전히 위험한 바그다드에 남아서 기사와 사진을 보내고 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이라크 전쟁이 끝났다지만, 전후의 혼란 속에 또 다른 의미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요즘의 바그다드는 적과 아군이 확실하게 구분되던 전시보다 더 위험한 시기인 셈이지요. 이라크에서 돌아온 후 다른 기자들이 쓴 기사를 읽는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특히 위험지역에서 보내는 기사를 읽을 때면, 얼마나 어렵게 기사를 쓸까 하는 생각에 한줄한줄 정성들여 읽게 됐습니다.
저는 이제 평화롭고 편리한 환경에 둘러싸인 일상으로 돌아왔는데 기쁘기보다는 힘이 좀 빠져 있습니다. 새벽 2-3시까지 깨있으면서 서울 마감시간을 맞춰야 하는 워싱턴 특파원 생활도 만만치는 않지만, 순간순간 ‘기자로서 살아있다’는 느낌이 강렬했던 이라크 전쟁의 현장이 문득 그리워지는 것입니다. 전쟁이 그리운 게 아니라, 누가 뭐래도 쓰고 싶은 것을 쓰겠다는 자신감이 한껏 살아 있었던 그 예외적인 현장이 그리운 것입니다.
이라크 종군취재를 마친 후 저는 키가 한뼘쯤 훌쩍 커버린 것처럼 성장한 기분을 맛봤습니다. 전쟁터에서 정신적·육체적 한계상황을 견디면서 성장했고, 지난 10여년간 기자생활 하는 동안 받았던 것보다 더 많은 과분한 칭찬과 과도한 비판을 한꺼번에 소화하면서 조금 더 컸습니다. 말도 안되는 억지비판을 견디는 맷집도 좀 키웠습니다. 하지만 배우고 체험한 것이 너무 많아서 머리는 무겁고 마음은 복잡합니다. 어려운 숙제를 잔뜩 받아온 기분이라고 할까요.
이라크의 사막에서 지고 다니던 배낭과 더플백에서 쏟아져 나온 모래먼지도 다 털어냈고, 전쟁중 한순간도 떼어놓지 않았던 방탄조끼와 헬멧, 군화도 상자에 넣어 깊숙이 쳐박았습니다. 예외적인 방식은 예외적인 상황에서나 필요한 법. 이제는 일상의 미덕으로 돌아와야 할 때지요. 하지만 전쟁중에 '이런 상황에서도 취재하고 기사를 쓸 수 있다면 앞으로 못할 일이 뭐가 있으랴'는 생각에 세상에 무섭지 않았던 자세가 계속 살아 있도록 하는 일이 제게 가장 큰 과제입니다.
이메일과 기자클럽을 통해 따뜻한 격려와 따끔한 비판을 해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일일이 답장을 쓰지 못해 죄송한 마음도 함께 전합니다. 이제부터는 다시 워싱턴에서 보내는 기사로 만나뵙도록 하겠습니다.
( 워싱턴=강인선 특파원 insun@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