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의 전 역사를 통틀어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역시 암행어사
아닐까.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마패, 그림자처럼 움직이는 늠름한 상도,
마패를 앞세우고 대문을 박차고 들어서면 개구리 떼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도망가는 탐관오리, 허름한 옷을 입어도 감출 수 없는 지성적 외모,
암행어사 출두 후 얼굴을 가렸던 부채를 치우면 놀라고 반가워하는
서민들. 그 매력적인 캐릭터를 가만히 둘 수 없어서, 암행어사는 소설과
드라마와 만화로 무수히 변주되어 나타났다. 사람들은 어서 암행어사가
마패를 앞세우고 출두하여 이 더러운 판을 한꺼번에 정리해주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암행어사가 의미하는 것은 "가장 잔혹한 복수"이다. 암행어사는
사람들이 잘못을 문득 뉘우치고 완만하게 자신의 잘못을 수습하며
반성하는 것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는 악행이 가장 무르익은 순간에,
기회를 노리고 기다렸다가 급습한다. 악행이 절정으로 빛날 때
암행어사의 등장은 더욱 화려해지고, 효과는 더욱 확실해진다.
암행어사를 본질적으로 대표하는 단어는 평화, 정의, 사랑이 아니다.
복수, 그것도 가장 요란한 복수다.
스메라기 나츠키의 '이조 암행기'는 복수에 대한 이야기다. 암행어사가
모든 것을 짊어지고 대행하는 복수만이 아니다. "북방의 질풍"편에서
암행어사는 결국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탁구공처럼 왔다갔다
하는, 목숨을 건 복수를 지켜본다. 아랑은 자신의 부모를 죽이고 자신을
겁탈한 야인 토르쉔과 3년간 부부로 살다가 아이를 데리고 탈출한다.
그녀를 데리러 온 토르쉔은 그녀가 아이를 데리고 나온 이유가 가장
끔찍한 복수를 위해서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이 낳았지만 토르쉔의
아이이기도 한 한 살배기 아들을 산에 버림으로써 아랑은 복수를
완성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아픔을 절실히 깨닫게 하는 것. 그것이
아랑의 복수다. 그것은 또 다른 복수를 약속하는 복수다.
그러므로 복수야말로 가장 허무한 것이 아닐까. 모든 것은 한몫에 끝나지
않는다. 가장 요란하게 판을 뒤엎는 암행어사가 나타나도, 이후로도 삶은
오래 지속되고 복수는 지루한 연속극처럼 끝날 줄을 모른다.
(박사/ 책칼럼니스트·baxa@sugarspr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