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5일은 미국 DVD업계로선 역사적인 날이었다. 그날 집계된 한 주간의 DVD 대여량이 사상 처음으로 비디오 대여량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대여료가 비싼 DVD 대여수입이 비디오 대여수입을 앞질렀던 것은 이미 지난 3월이었지만, 이번에 대여량까지 비디오를 넘어서게 됐다. 외신들은 “시장에 나온 지 6년 만에 ‘DVD 시대’ 개막을 알린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보도했다.
그렇다면 미국보다 2~3년 늦게 출발한 한국 DVD 시장의 현실은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은 DVD 대여 문화가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한 상황이다. 하지만 매년 2.5배씩 성장하고 있는 DVD 시장의 잠재력으로 보면 곧 한국에도 대여 시장이 활성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상황 자체는 매우 열악하다. 우선 DVD플레이어를 갖춘 가정이 전국 1400만가구 가운데 10%에 불과하다. 국내 7000~8000개의 비디오대여점 중 DVD 타이틀을 갖춘 곳은 30~40%에 불과하고, 비치한 대여점도 대부분 산더미 같은 비디오들 속에 고명처럼 100~200개를 얹은 수준이다. 일반 소장용 DVD보다 값이 싼 ‘대여용’ DVD를 출시하고 있는 제작사도 있지만, 대부분은 아직 대여용을 출시하지 않고 일반 판매용 DVD만 내놓고 있다. 이런 현실도 DVD 대여 시장이 아직 활성화하지 못한 중요한 이유다. 대여용 DVD는 현재 판매량 1000개를 넘긴 타이틀이 별로 없을 정도로 외면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콜럼비아 트라이스타의 구창모 상무는 “우리의 상황은 대여용 DVD와 소장용 DVD를 구분해 판매하는 외국과 다르다”고 말했다. 따로 대여용 DVD를 내는 제작사가 드물기 때문에 대여점 점주들이 소장용 DVD를 사서 대여 업무를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렇기에 점주들은 일부 흥행대작들만 갖춰놓기 마련이고, 소비자들은 자연히 선택의 기회가 줄어들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내 DVD 대여시장은 아직 그 규모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비디오 시장의 경우 판매와 대여를 합쳐 지난해 총 수입은 3000억원. 같은 기간 DVD는 900억원 가량 판매됐지만 이 중 얼마가 대여점으로 흘러들어가 대여 수입을 얼마나 올렸는지는 알 수 없다.
메이저 제작사 가운데 유일하게 국내에서 대여용 DVD를 내놓고 있는 이십세기폭스코리아는 시장 상황이 예상과 달라 충격을 받고 있다. 소장용 DVD보다 2000~3000원 싼 2만원 정도의 가격에 대여용 DVD를 판매하고 있지만 ‘로드 투 퍼디션’처럼 인지도가 높은 대작도 2000장밖에 팔리지 않을 만큼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폭스 관계자는 “대여점을 찾는 소비자들이 서플(부록)이 제대로 갖춰져 있어 볼거리가 많은 소장용 DVD를 빌려 보고 싶어하기 때문에 업주들도 대여용 DVD 구매를 꺼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앞으로 1~2년 후면 한국의 DVD 대여시장도 본 궤도에 오르리라는 관측이 많다. 김종래 파파DVD 대표는 “지금은 비디오 대여와 DVD 대여 비율이 9대1 수준이지만 해가 갈수록 활기를 잃어가고 있는 비디오 시장에 비해 DVD 시장은 매년 2.5배씩 성장하고 있다”며 “DVD 플레이어가 300만대 이상 보급될 것으로 보이는 1~2년 뒤면 DVD 대여 문화도 정착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용인에서 ‘영화마을’ 체인점을 운영하는 윤성일(40)씨는 “최근 들어 10명 중 4명이 DVD를 찾는다”며 “1년 전에 비해 DVD 손님들이 5배는 늘었다”고 말했다. 2년 전 집에 DVD 플레이어를 들여놓은 회사원 김지용(35)씨는 “처음엔 대여점에 원하는 DVD가 없어 구하느라 고생했지만, 요즘엔 집 근처에 1000여개의 영화 DVD를 갖춘 대여점이 생겨 손쉽게 DVD로 영화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