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정몽헌 회장 빈소에 현대 오너 가족들이 차례로 도착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정인영 한라그룹 명예회장,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 정몽근 현대백화점 회장.<a href=mailto:cjkim@chosun.com>/김창종기자 </a> <a href="http://photo.chosun.com/html/2003/08/04/200308040002.html">[포토뉴스 관련사진 보기]<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의 투신 자살로 고(故) 정주영(鄭周永) 전 현대그룹 회장 일가에는 또 하나의 비운(悲運)의 스토리가 추가됐다.

‘한국경제의 신화(神話)’, ‘왕 회장’ 등으로 불렸던 정주영 회장은 정인영 회장 등 5명의 동생들과 힘을 합쳐 현대그룹 신화를 일궈냈고, 슬하에는 8남1녀의 자녀와 30여명에 달하는 손자손녀를 두었다. 하지만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속담처럼 수많은 형제·자손들의 숫자만큼이나 비운의 스토리가 많았다.

정몽헌 회장의 투신 자살로 정주영 회장의 아들 가운데 사고로 숨지거나 자살한 사람은 모두 3명으로 늘어났다. 첫째아들인 정몽필(鄭夢弼) 인천제철 사장은 지난 82년 4월 교통사고로 타계했다. 90년 4월에는 정신질환을 앓던 넷째아들인 몽우(夢禹·전 현대알루미늄 회장)씨가 강남구 모 호텔에서 음독자살한 시체로 발견돼 정주영 회장에게 커다란 심적 타격을 주었다.

비극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91년에는 첫째 며느리 이양자씨마저 지병으로 사망했고, 이번에 정몽헌 회장이 자살했다.

정주영 회장의 형제들 중에도, 그가 “동생들 중에서 가장 똑똑하다”고 말하던 신영(信永)씨가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하던 중 지난 62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정치 대권(大權)에 대한 도전 실패도 정씨 일가로서는 기업인의 인생을 바꾼 ‘비운의 역사’로 기록된다. 정주영 회장 자신에 이어 아들인 정몽준 의원도 대권 도전을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정씨 일가는 정주영 명예회장 말년, 그의 ‘후계자’ 자리를 둘러싸고 형제들간에 치열하게 세력다툼을 벌임으로써 가족관계에 치유할 수 없는 깊은 골이 패였다. 특히 2000년 3월에 벌어진 정몽헌 회장과 정몽구(鄭夢九) 현대자동차 회장 간에 벌어진 ‘왕자의 난’은 현대그룹의 운명을 가른 사건이었다. 당시 현대건설,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 현대상선, 현대엘리베이터 등 주요 계열사를 이끌던 정몽헌 회장은 현대그룹의 후계자 지위 굳히기에 들어갔고 현대자동차의 경영권까지 노렸다. 하지만 형인 정몽구 회장의 강력한 반발과 계열사에 대한 취약한 지분구조로 인해 현대자동차 ‘장악’에는 끝내 실패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양측은 각종 치부(恥部)를 드러내면서, 형제간에 눈살 찌푸리는 싸움을 벌여 불명예스런 기억을 남기기도 했다.

특히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 등 ‘가신(家臣)’으로 불리는 일부 전문경영인들이 양측 싸움에 깊숙이 개입하면서, 현대그룹은 돌이킬 수 없는 분열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그동안 세간에서는 형제간의 화해 가능성을 점치기도 했으나, 정몽헌 회장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끝내 불발로 끝나고 말았다. 정몽구 회장은 지난 3월 20일 저녁 청운동 옛 정주영 명예회장 자택에서 열린 제사에도 아들인 정의선(鄭義宣) 현대·기아차 부사장만 보낸 채 불참, 불편한 심기를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선영에도 혼자 먼저 다녀와 동생인 정몽헌 회장과의 대면을 피한 것. 몽구 회장은 지난달 14일에는 서울 정동교회에 열린 몽우씨의 아들 문선씨의 결혼식에 혼주 자격으로 참석해 동생인 정몽헌 회장과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했다. 그러나 이날도 정몽구 회장은 몽헌, 몽준 등 형제들과 대화를 거의 나누지 않은 채 서먹서먹한 모습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