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조한혜정 교수 <br><a href="http://photo.chosun.com/html/2003/06/10/200306100009.html">▶포토뉴스 호주제 반대 관련사진 보기<

조한혜정 (54) 연세대 사회학과교수는 학계에서 호주제 철폐운동에 앞장서온 대표적인 인물이다. 조한교수는 지난 22일 법무부가 호주제 폐지를 입법 예고한 뒤 기자와 만나 “여성만 호주제의 피해를 본 것이 아니다. 가부장적 문화에서는 맏아들은 결혼하기 어려운 상황이 나타나는 등 결국 남성도 호주제의 피해자”라고 말했다.

그는 “권위의 상징인 호주가 사라지면 가족이 해체되는 게 아니라 가족 내 개개인을 존중하는 양질의 가족 관계로 다시 정리될 것”이라며 “호주제는 남자들이 가정과 사회에서 소외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꼭 폐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1971년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한 조한혜정 교수는 1979년 미국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문화인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 한국 사회의 근대성과 가부장제에 관한 연구를 계속해 해오고 있다. 지난 1998년부터는 모계를 새롭게 인정하고 호주제 폐지 등 법적인 문제에 파급효과를 주기 위한 ‘부모성 같이 쓰기 1백인 선언’에 동참해 ‘조혜정’을 대신해 ‘조한혜정’이라는 이름을 사용해 왔다.

호주제 폐지반대 유림 궐기대회 /최순호 기자 <br><a href="http://photo.chosun.com/html/2003/06/10/200306100009.html">▶포토뉴스 관련사진 보기<

다음은 조한혜정 교수와 일문일답.

-호주제 폐지가 현실화되고 있는데 소감은.

“개인적으로 호주제는 1980년대 서울 올림픽 전후에는 없어졌어야 했다고 본다. 그랬다면 한국이 이혼률 세계 2위, 저출산률 세계 2위라는 지금의 사태는 예방됐을 것이다. 호주제의 존속으로 사회와 가족제도가 합리화되는 시기를 놓쳤기 때문에, 부부 간 소통의 어려움으로 인한 황혼 이혼이 늘고 있고, 젊은 여자들은 결혼을 하지 않거나, 결혼을 한 뒤에도 출산을 포기하고 있다.”

-호주제로 남자도 피해를 받는다고 주장해왔는데

“큰아들이 결혼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부터 좀 다른 삶을 살고자 하는 남자가 당하는 억압, 그리고 '남자다와야 한다'는 강박으로 인해 무리한 삶을 사는 이들이 아주 많다. 또한 가부장적 가족에서는 아버지의 육아 참여는 부정적으로 인식된다. 이런 생각은 아버지를 소외시키는 등 문제를 낳아왔다.”

-호주제가 폐지되면 가족의 개념이 사라지나.

“아니다. 새로운 가족 문화를 더 활발하게 만들어가야 한다. 요즘 온라인에서도 가족과 친척 홈페이지가 많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이런 변화는 아주 고무적이다.”

-가족내에서의 노약자 부양에 대한 의무감이 사라지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미 가족 안에서 이뤄지던 부양관행은 많이 깨졌다. 더 이상 의무감으로 가족과 사회질서를 유지할 수 없는 시대임을 인식해야 한다. 구성원 한 명 한 명이 보다 더 원활한 소통과 질적 만족을 얻을 수 있는 현대적 공동체 마련해야 한다. 그곳에서 가족의 가장 핵심적 역할인 육아와 교육, 그리고 노인 봉양의 문제를 제대로 풀어가야 한다. 이미 우리 주변에 개개인이 존중받으면서 공동체적 가치의 긍정성을 살리는 곳들이 많이 있다.”

-호주제가 폐지되면 자녀가 부모의 성을 선택해서 쓸 수 있다. 조한혜정이라는 이름은 더 이상 안 쓸 것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조한혜정이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지고 책도 출간되었기 때문에 이 이름을 계속 쓸 것 같다. 처음에 부모성 함께 쓰기를 한 건 호주제를 폐지하고 여자아이를 낙태시키지 말자는 운동에 동참하기 위해서였다. 호주제가 폐지되면 성이 가진 신성성이 사라지니까 어떤 성을 갖든지 큰 문제는 없다. 성을 선택할 수 없는 상태에서 아버지의 성만을 써야만 하는 것과는 다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