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는 올해 전세계 극장가에서 물로 흥했다. 바다를 배경으로 한 디지털 애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에 이어 미국 극장가에서 디즈니 돌풍을 또 한번 일으킨 해양 액션 블록버스터 ‘캐리비안의 해적:블랙펄의 저주’가 5일 국내 개봉된다.
‘니모를 찾아서’와 ‘캐리비안의 해적’은 올 여름 미국 극장가에서 ‘헐크’ ‘터미네이터3’ 등 경쟁작들을 ‘물 먹이며’ 흥행순위 1, 2를 각각 점령했다. 지난 주말까지 미국에서 2억6000만달러의 기록적 매표수입을 올린 ‘캐리비안의 해적’은 그동안 숱하게 나온 해적 이야기를 로맨틱하고 엉뚱한 방식으로 비틀고, 특수 시각효과에도 공을 들인 1억2000만달러짜리 해양 액션 블록버스터다.
18세기 초. 해적선 블랙펄의 선장 잭 스패로(조니 뎁)는 사악한 해적 바르보사(제프리 러시) 일당의 선상 반란으로 배를 빼앗기고 지중해를 떠돈다. 바르보사 일당은 영국군이 주둔 중인 포트 로열을 공격하고 총독의 딸 스완(키라 나이틀리)을 납치한다. 자신이 유명한 해적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대장장이 윌(올랜드 블룸)은 잭 스패로와 함께 군함을 훔쳐 타고 블랙펄을 뒤쫓는다.
해적 영화는 화려한 SF 대작들이 판치는 흥행의 바다로 나가지 못하고 뭍에 정박할 수밖에 없었던 낡아빠진 장르 같았다. 그러나 21세기에도 ‘캐리비안의 해적’은 보란듯이 닻을 올리고 배를 출항시킨다. 독특한 해적 영화이기 때문이다. ‘진주만’ ‘더 록’의 제작자 제리 브룩하이머와 ‘마우스 헌트’ ‘멕시칸’의 고어 버빈스키 감독, ‘가위손’ ‘길버트 그레이프’의 연기파 배우 조니 뎁이 ‘슈렉’의 시나리오 작가들과 뭉친 것만으로도 큰 기대를 불러일으켰던 이 영화는 기존 해적 영화에 없었던 두 가지 항로(航路)로 바다를 가른다.
첫번째 항로는 ‘저주받은 해적’이라는 설정. 이 영화의 해적은 우리가 알던 해적이 아니다. 술에 취한 채 영원히 살 것처럼 약탈을 일삼는 해적이 아니라 ‘캐리비안의 해적’은 보물을 훔친 자리에 돌려놓고 죽고 싶어하는 해적이다. 바르보사 일당은 영원히 죽지 않지만 달 뜬 밤이면 볼썽사나운 해골로 변하는 저주를 받았기 때문이다.
나머지 하나는 유머다. 저주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해적 영화에는 살육이 없고 그 빈 자리를 코미디가 채운다. 특히 잭 스패로는 더없이 가볍게 흐느적거리며 웃음을 전염시는 해적 캐릭터. 영화가 순풍을 타듯 자연스럽게 미끄러지는 건 ‘18세기의 록스타’를 연상시키는 헤어스타일과 복장을 한 조니 뎁의 순발력 있는 연기 덕분이다.
잭 스패로가 점점 바다에 잠기는 배의 돛대 꼭대기를 잡고 육지에 닿는 만화영화 같은 장면으로 시작하는 ‘캐리비안의 해적’에는 호쾌한 액션이 빠지지 않는다. 달빛을 받아 순식간에 흉측한 몰골로 변하는 해적들, 블랙펄과 영군 군함이 벌이는 해상전투 등은 특수 시각효과와 스케일이 돋보인다. ‘반지의 제왕’에서 은발의 요정 레골라스로 낯이 익은 올랜도 블룸과 ‘슈팅 라이크 베컴’의 축구광 키라 나이틀리의 로맨스도 영화에 재미를 더했다.
‘캐리비안의 해적’은 섬뜩한 해골이 나오고 전투장면이 많아 미국에서 13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았다. 가족영화를 추구해온 디즈니로서는 사상 처음 받은 등급이다. 디즈니는 롤러코스터 같은 영화를 만들어 극장흥행을 시킨 뒤 다시 디즈니랜드 테마파크 아이템으로 추가해 또 우려먹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 영화에도 얼핏 그런 노림이 보이지만, 추석 극장가에서 돋보이는 외화임에는 분명하다. 해적과는 별 상관없이 살아온 한국 관객을 얼마나 잡아끌지는 알 수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