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상투적 묘사를 비꼰 우스개 중에 이런 게 있다. “파리의 모든 집 창문으로는 에펠탑이 보인다.” 그러면 이탈리아 영화에 빠지지 않는 물건으론 무엇이 있을까. 그중 하나로 자전거를 꼽을 만하다. 자전거가 이탈리아 토산품도 아닌데,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의 대표작인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자전거 도둑’(48년작)을 비롯해 많은 이탈리아 영화에 줄기차게 나온다.
‘시네마 천국’의 감독 주세페 토르나토레의 ‘말레나(Malena)’도 그렇다. 전쟁과 파시즘, 폭력 속에서 할퀴고 찢긴 이탈리아 현대사를 13세 사춘기 소년 레나토의 눈으로 바라본 이 영화에서도 레나토의 분신(分身) 같은 물건이 자전거다. 영화는 레나토가 생일선물로 자전거를 받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우울한 전란의 시대에도 말레나라는 여성에 빠지는 소년은, 말레나의 꽁무니를 따라다닐 때마다 늘 이 자전거와 함께한다. “내가 당신을 지켜줄 테니 내가 어른이 될 때까지만 기다려 주세요”라고 되뇌며 소년은 힘차게 페달을 밟는다. 소년이 양 어깨까지 실룩거리며 자전거 위에서 역동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주행장면은 그 어떤 연기보다도 펄떡이는 열정을 표현하는 데 제격이다. 소년이 말레나를 떠나는 라스트에서 소년은 이번엔 모든 갈망으로부터 탈출하려는 몸부림처럼 페달을 밟는다. ‘왜 자전거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영화적 필요성은 이런 대목에서 확연히 읽힌다.
소년의 펄떡이는 열정 담아내
그러고 보니 토르나토레는 ‘시네마 천국’에서도 영사기사 알베르토의 자전거에 소년 토토를 함께 태우고 시골길을 달리게 하면서 영원히 잊지 못할 ‘자전거 탄 풍경’을 빚어냈다. 이탈리아 에로티시즘 영화의 거물 틴토 브라스는 ‘모넬라’(98년)에서 여성의 엉덩이를 자전거 안장 위에 올려놓았다.
이탈리아가 왜 자전거를 이토록 사랑하는지 특별한 이유를 찾기는 쉽지 않다. 일단 어른들 절반 이상이 자전거를 상시 타는 유럽국가로서의 취향일 수 있다. 혹시 자전거의 실제적 발명이 이뤄진 16~17세기보다 훨씬 전인 15세기에 자전거 기본 설계도를 그린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이탈리아인이라는 데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어쨌거나 자전거는 이탈리아 영화의 중요한 아이콘이 된 듯하다. 오죽하면 할리우드 영화 ‘한여름밤의 꿈’도 배경을 이탈리아로 바꾼 뒤, 당연하다는 듯 자전거를 첫손 꼽을 만한 중요 소품으로 동원하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