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탈식민주의 계열 작품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존 맥스웰 쿠체(63·J M Coetzee)가 선정됐다.
스웨덴 한림원은 2일 쿠체의 작품에 대해 “정교한 구성, 풍부한 대화, 그리고 예리한 분석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서구 문명의 잔인한 합리주의와 위선적인 도덕성에 대해 가차 없는 비판을 가했다”고 덧붙였다.
한림원 종신위원인 호레이스 엥달씨는 “올해의 수상자 결정은 쉬웠다”고 말하고, “우리는 그의 문학에 대한 기여가 지속적인 가치가 있다는 데 확신을 가졌다”고 말했다.
남아공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지난 91년 나딘 고디머 이래 이번이 두 번째다. 쿠체는 1983년, 1999년 두 차례나 영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부커상을 수상했다.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네덜란드계 백인으로 태어난 쿠체는 주요 작품으로 부커상 수상작인 ‘마이클 K의 삶과 세월’(1983), ‘추락’(1999)뿐 아니라 ‘더스크랜즈’(1974), ‘철기시대’ 등이 많이 알려져 있다. 국내에는 ‘야만인을 기다리며’ ‘추락’ ‘페테르부르크의 대가’ 등이 번역돼 있다.
(최홍렬 hrchoi@chosun.com)
뼛속까지 파고드는 진실을 얘기하는 남아프리카 작가
네덜란드계 백인(아프리카너) 작가인 쿠체(63)가 올해의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것은 지금까지 그가 구축해 온 소설의 예술적 질과 품격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케이프타운에서 태어나 성장했고, 소설가로서는 다소 예외적으로 수학, 언어학, 컴퓨터를 전공했다.
쿠체의 소설세계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그가 “남아공의 상황을 식민주의, 후기 식민주의, 신식민주의와 관련이 있는 더 넓은 역사적 상황의 한 표현”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 말을 조금 달리 하면, 그가 “유럽의 상황과 남아공의 상황을 가르는 선이 있다는 데 회의적이며” 남아공의 상황을 보편적인 “식민지” 상황으로 인식한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쿠체는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이데올로기와 그것에 관련된 남아공의 현실을 하나의 “변종”으로서가 아니라 “식민주의, 후기 식민주의, 신식민주의”에서 으레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으로 인식한다. 이는 쿠체의 소설이 보편성을 획득하는 주된 이유이다. 이것은 쿠체가 70-80년대에 남아프리카의 좌파 학자들이나 지식인들로부터 남아프리카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은 이유이기도 하다.
쿠체보다 10여년 앞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남아프리카의 나딘 고디머 여사가 쿠체의 “찬란한” 재능을 누구보다도 높이 평가하면서도 마땅치 않게 생각했던 것도 여기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것은 세계의 학자들로부터 쿠체가 남아프리카적인 상황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보편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
쿠체는 어떠한 경우에도 타협하지 않는 작가이다. 그의 소설들은 남아공 사람들이 처해 있는 상황을 한오라기의 감상도 없이 바라보는 작가의 예리한 눈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가 “존재의 중추신경”을 건드리고, “뼛속까지 파고드는” 진실을 얘기한다는 말은 맞는 말이다. 소설을 자신의 “사유의 한 방식”이라고 생각하는 쿠체는 자신의 인식의 지평 안에 있는 것은 어느 것이든 헤집어보고 회의하고 의문시한다.
그래서 그의 소설에는 끝없는 의문부호만 있을 뿐, 어떤 해결점이 없다. 아이로니컬한 맥락에서 한 말이긴 하지만, 고디머의 말을 인용하면, “종달새처럼 하늘로 솟아, 독수리처럼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쿠체의) 상상력”에는 섣부른 감상이나 낙관이나 환상이 자리잡을 여지가 없다. 그의 소설이 차갑고 임상적인 느낌을 주는 것은 그래서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
쿠체는 그 어떤 작가보다도 “지적인 힘과 균형적 스타일, 역사적 비전과 윤리적 통찰력을 독특한 방식으로 통합”시킨 독창적인 작가임이 분명하다. 그는 ‘철의 시대’, ‘야만인을 기다리며’, ‘페테르부르크의 대가’, ‘추락’, ‘더스크랜즈’, ‘마이클 K’, ‘나라의 심장부에서’를 통해서 놀라운 예술세계를 구축해 온 문학사에 길이 남을 소설가임이 분명해 보인다.
영문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노튼 영문학 앤솔러지’에 그의 소설이 수록된 것은 세계의 학자들이 그의 작품의 예술성을 인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노벨문학상이 이처럼 뛰어난 작가에게 수여된다는 것은 영문학을 전공하는 이들에게 가슴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왕은철/ 전북대 영문과교수)
존 맥스웰 쿠체 약력
194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출생
남아공과 미국에서 컴퓨터과학 언어학 공부
독일어 및 영어로 작품활동 시작
첫 작품 ‘더스크랜즈’(Dusklands)이후
‘마이클 K’(1983·부커상)
‘포우’(Foe)
‘철의 시대’(Age of Iron)
‘페테르부르크의 대가’(The Master of Petersburg)
‘추락’(Disgrace)(1999·부커상)
‘엘리자베스 코스텔로: 8가지 교훈’(2003)
2002년 호주 거주. 아들레이드 대학에서 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