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미(中美)의 파나마가 지난 3일 독립 100주년을 맞았다.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파나마 운하로 유명한 파나마는 면적 약 7만8200㎢, 인구 약 300만명의 작은 나라이다. 1903년 11월3일 운하의 전략적 중요성에 눈독을 들인 미국의 도움으로 콜롬비아군(軍)을 몰아내고 독립했다. 대신 운하지대의 영구조차권·치외법권·무력간섭권을 미국에 양도했다. 파나마는 1821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했으나, 이후 82년간 콜롬비아에 종속돼 있었다.
전장 64㎞의 파나마 운하는 1914년 건설됐다. 미군은 1999년 12월 31일자로 운하 운영권을 파나마에 돌려주고 철수했다. 그동안 운하는 미국이 임명한 위원회에 의해 운영됐으며, 이 일대는 인종적·문화적으로 파나마와는 별개인 ‘리틀 아메리카’로 불렸다. 미국은 운하 건설 뒤 파나마 땅을 미군훈련장으로도 이용하면서 미군기지가 한때 130개에 달했었다.
1964년 1월 파마나 학생들이 운하지대에 들어가려다 미군·경찰과 충돌해 20여명이 사망하면서 파나마인들의 본격적인 저항운동이 시작됐다. 그 결과 1977년 오마르 토리호스(Torrijos) 당시 파나마 대통령과 지미 카터(Carter) 미국 대통령은 1999년 말을 기해 운하 운영권을 파나마에 넘긴다는 조약에 서명했다.
그러나 당시 조약은 운하가 위협을 받을 경우 미국이 개입한다는 단서를 달았고, 군부 독재자 마누엘 노리에가(Noriega)가 미국의 이해관계를 거스르자 1989년 12월 20일 조지 부시(Bush) 미 대통령은 2만4000여명의 미군을 파견해 정권을 붕괴시켰다. 미국으로 송치된 노리에가는 마약 거래와 살인죄 등의 혐의로 플로리다에서 4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이번 독립 100주년 기념식에는 14개국 정상 외에 파나마 침공 당시 미군 합참의장이었던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참석해 주목을 끌었다.
파나마는 노리에가가 제거된 뒤 1989년 대선에서 기예르모 엔다라(Endara) 대통령이 당선돼 친미국가로 돌아섰고, 1994년 당선된 에르네스토 바야다레스(Balladares) 대통령이 공기업의 사유화와 사회간접자본시설 확충, 보건·교육 개선 정책으로 국가의 틀을 잡았다. 바야다레스는 헌법상의 연임 불가 규정에 따라 재출마하지 못했고, 1999년 아르눌포 아리아스 전 대통령의 부인인 미레야 모스코소(Moscoso)가 새 대통령으로 선출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