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지난 1년 동안 ‘말’ 때문에 숱한 화제를 뿌렸다. 또 그의 ‘말’은 세간에 회자되는 유행어가 되거나 ‘탈(脫)권위주의’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지만, 국민들의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지지도를 추락시키는 악재로 작용했다.

5·18 행사 때 한총련 등 대학생들의 시위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데 비난이 쏟아지자 “대통령직을 못해 먹겠다는 위기감이 든다”고 한 말은 올해의 최고 유행어가 됐다. 세간에서는 ‘국민 노릇도 못해 먹겠다’는 반응도 나왔다. ‘대통령직 못해 먹겠다’는 발언은 10월의 ‘재신임투표’ 선언에서 현실화됐고, 이번달 ‘불법 선거자금이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으면 정계은퇴하겠다’는 발언에서 정점에 달했다. 지난 4월 언론 인터뷰에선 “DJ정부의 실패과정이 반복되고 있는 느낌을 받아, ‘우울하다’ ‘불안하다’”고 했지만, 곧 “엄살 좀 떨어봤다”고 해명(?)했다.

후보 시절 ‘반미면 어떠냐’던 대미(對美)관은 지난 2월의 북핵 위기에 대해 “다 죽는 것보다는 어려운 게 낫다”라는 말로 이어졌다. 그러나 5월 미국 방문 때는 “53년 전 (6·25때) 미국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쯤 정치범 수용소에 있을 것”이라고 했고, 지난달에는 “미국에 조금 속상해도 손 꽉 잡고 가야 한다”고 했다.

3월 검사와의 대화에서 나온 “이쯤하면 막 하자는 것이죠?”, 당선 직후 “청탁하다 걸리면 패가망신 시키겠다” 등 직설적 표현은 계속됐다. ‘쪽수’ ‘통박’ ‘개판’ ‘배알’ ‘깡통찼다’ ‘백수’ ‘개XX들’ ‘조지다’ ‘맛 좀 볼래’ 등 대통령이 사용하는 언어로는 부적하다고 판정을 받은 ‘시장의 언어’들을 사용해 국민들에게 당혹감을 안겼다.

측근들 문제와 관련, 안희정씨는 ‘동업자’라고 했고, 이기명씨에 대해서는 이메일에서 “선생님이 당하고 있는 고초를 생각하면 잠을 못 이룬다”며 옹호했다. 최도술씨 문제가 터졌을 때는 “눈앞이 캄캄했다”고 했으며, “안(대희 중수) 부장 때문에 죽을 맛”이라고 말해 야당으로부터 비난을 샀다. 측근비리 보도에 대해 노 대통령은 “새까맣게 발랐다”며 언론에 불만도 드러냈다. 한편 노 대통령은 이메일에서도 개혁대상 정치인들을 비유한 ‘잡초론’ ‘호시우행(虎視牛行)’ 등 화제의 말을 양산했다.

노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과 달리 외부로 노출된 행사 자체가 많고, 이를 대부분 언론에 공개했다. 여기에 ‘언론과의 긴장관계’로 인해 과거 같으면 ‘관리됐을’ 발언들도 여과 없이 소개된 측면이 있다.

설화로 고생을 치른 노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은 하반기 들어 ‘메시지 관리’에 들어갔고, 일정한 성과도 거뒀다. 노 대통령 스스로 일부 발언의 부적절성을 인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연말에 터진 ‘10분 1 정계은퇴’ 발언은 또다시 논란의 한가운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