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후배가 찾아와 ‘어떻게 하면 선배님처럼 멋지게 재혼할 수 있냐’고 묻더군요. 26년을 함께 살아온 우리 부부를 재혼으로 오해하더라니까요. 화냈냐고요? 재미있어서 웃었습니다.”(만화가 남편 김동화)
“옛날부터 작은댁이냐는 소리 많이 들었어요. 처음에는 불편했지만 이제는 그냥 ‘그렇게 보라지!’ 하고 만답니다.”(만화가 부인 한승원)
조선일보에 ‘빨간 자전거’를 주간 연재하며 10대 소년과 70대 노인들에게서 동시에 팬레터를 받는 김동화 씨와, 만화잡지 ‘이슈’에 8년 넘게 ‘프린세스’라는 작품을 장기연재하며 순정만화 최장연재 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한승원 씨는 한국 만화계를 호령하는 최고의 스타부부다. 만화계에서는 유명한 잉꼬부부. 그러나 부부의 외모 차이 때문에 엉뚱한 오해를 받기도 한다. 남편은 흰머리가 제법 틀을 잡았는데, 부인은 아직 30대라 해도 믿어야 할 판이다.
“나는 정직하게 나이를 먹고 있는데, 순정만화를 그리는 집사람은 맨날 소녀들 사랑 얘기만 생각해서 그런지 도무지 나이를 먹지 않는 것 같아요.”(남편)
“부부가 오래 살면 왜 사랑의 설렘을 접어야 하나요? 내가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면 순정만화를 그릴 수 없을 거예요.”(아내)
한씨는 한 술 더 뜬다. “나는 아직 남편의 ‘굿나잇 키스’를 포기할 생각이 없어요. 함께 외출할 때 그이와 팔짱을 끼는 것, 집에 있을 때 창밖으로 마당의 꽃을 다듬는 남편을 보는 것, 모두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그래도 매번 새롭고 흐믓한 경험들인걸요.”
외모만큼 다른 것은 그들의 작품 방향이다. 남편 김씨가 순정만화가로 활동하던 시절, 그의 첫 문하생이었던 한씨는 결혼하고 낳은 대학생 큰 아들이 군대까지 갔다 온 지금까지 순정만화의 외길을 고집하고 있다. 그녀의 작품 가운데 ‘그대의 연인’은 지금도 순정만화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반면, 김씨는 끊임없이 새로운 변화를 추구해왔다. “한 10년 순정만화를 했어요. 하지만 남자 작가로 순정물을 하는 데는 한계가 있더군요.” ‘목마의 시’ ‘아카시아’ 등으로 주목받던 그였지만 1990년대 들어서면서 ‘황토빛 이야기’ ‘기생이야기’ 등을 선보이며 성인만화작가로 변신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부부가 함께 낸 작품이 몇 편 있다. 1980년작 ‘우리들의 이야기’는 남편이 그리고 아내가 글을 썼다. ‘에반제린’ ‘멜로디 하모니’도 부부가 함께 만든 작품이다. 그러나 1988년 이후에는 확실하게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작품세계는 다르지만 서로를 이해하는 데는 아무 문제 없습니다. 얼굴만 봐도 ‘오늘 스토리가 잘 안 풀렸나 보다’ 하고 알죠. 신경이 날카로워 보이면 위로하지 않고 슬쩍 자리를 피해줍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창작은 결국 자신과의 싸움이니까.”(남편)
“나 같은 여자에게 만화가 남편이야말로 하늘이 점지한 배필이죠. 만약 그이에게 규칙적으로 출근해야 하는 직장이 있었다면, 난 뒷바라지하느라 만화를 그리지 못했을 거예요.”(아내)
설익은 간섭이나 충고보다는 애정을 담은 말없는 응원이 부부에게 오히려 힘이 된다고 한다. “그래도 정 힘들면 야간 드라이브를 즐겨요.” 만화가는 주로 밤에 일을 한다. 이들 부부도 주로 밤에 만화를 그린다. 부부는 “밤은 우리 같은 만화가부부를 위한 시간”이라고 맞장구 쳤다. “그런데 아이들 몰래 부부싸움을 해야 할 때도 야간 드라이브는 좋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