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현

내년 1월부터 휴대폰 서비스에서 가입자가 전화회사를 선택하는 번호이동성 제도가 도입된다. 이 제도의 도입은 소비자의 불편을 줄이고, 사업자 선택의 제한 요인을 제거하여 소비자 선택권을 증진시킨다는 정책목표를 가지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이 제도는1999년 영국에서 처음 시작돼 EU와 미국, 홍콩, 호주 등지에서 실시되고 있다. 지금까지 평가를 종합하면 이 제도는 소비자들의 사업자 변경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다만 홍콩의 경우 사업자들이 단말기 보조금 지급, 요금인하 등 적극적 마케팅 활동을 펼쳐 이 제도를 활성화시켰다. 그러나 사업자들의 수익성은 악화됐었다.

내년에 국내에서 번호이동성이 실시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주목된다. 이번 번호 이동성의 도입은 기업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경쟁 환경을 의미한다. 이동통신시장은 지난 97년 PCS 사업자들의 등장을 계기로 빠르게 성장했지만 가입자 수에 치중한 양적 경쟁양상으로 진행돼왔다. 이제 번호이동성의 도입은 소비자 편익을 중시하고 가치를 제공하기 시작하는 고객중심의 경쟁이 시작됨을 의미한다.

돌이켜 보면 이동통신산업의 성장에는 소비자의 역할이 매우 컸다. 반면 기업들은 고객서비스와 요금 측면에서 소비자들에게 합당한 혜택을 제공해 왔는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주관적 고객 서비스의 질은 차치하고 객관적인 측면이 있는 요금제도를 보자. 미국의 T-mobile 서비스는 최근 월 40달러의 요금에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월 600분의 무료통화를, 금·토·일요일에는 미국 내 모든 지역의 통화를 무료로 할 수 있는 ‘3-Day Weekend’ 요금제도를 도입했다. 우리나라 이동통신 시장에서 이런 혜택을 누리는 미국의 소비자가 부럽기만 하다.

국내에서도 번호이동성 제도가 도입되면 이와 유사한 혜택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요즘의 분위기를 보면 이 제도의 도입과정에서 발생되는 비용이 그 혜택을 훨씬 능가하는 상황이 발생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그것은 관련 비용이 결국 대다수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다음과 같이 접근해 보자.

첫째 정부는 개인 신상자료를 이용한 불법적 마케팅 등 번호이동성 도입으로 예상되는 문제들에 대해 철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또 소비자에게 혜택을 줄 수 있도록 정책방향을 잡고 지나친 업체간 경쟁에 따른 수익성 악화를 지양해야 한다.

둘째, 기업의 막대한 광고 및 고객 유치비, 그리고 사업자 전환에 따른 불필요한 단말기의 소비 등 번호이동성의 도입에 따른 막대한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해서는 안된다. 이런 비용들은 궁극적으로 고객에게 돌아갈 혜택을 감소시킨다. 또 기업들은 무료 통화시간 확대, 신규 부가서비스 제공 등 고객에게 실질적 가치를 주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

셋째, 소비자들도 좀 더 현명해져야 한다. 예를 들어 멤버십 제도, 혼란스럽고 비싼 요금제도 등 실속도 별로 없고 쓰기에 불편한 요소를 냉정히 평가해야 한다. 번호이동성 제도가 잘 정착되고 소비자가 실질적 혜택을 누리려면 무엇보다 소비자들이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유권자가 변하면 정치가 변할 수 있듯이 소비자가 바뀌면 궁극적으로 기업도 변한다.

(안재현·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jahn@kgsm.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