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표면에 착륙한 탐사선 ‘스피릿’의 성공 뒤에는 우리 과학자의 열정이 있었다. 그 주인공은 우주선 부품제조회사인 테이코(Tayco) 엔지니어링의 정재훈(鄭載勳·57) 우주개발 사장. 그는 이번 탐사선의 로봇팔 열조절장치와 극저온 케이블 등 핵심 설비를 개발해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밤늦게까지 일하지만, 우리가 만든 부품이 우주로 향하는 것을 보면 피로를 싹 잊어요. 다시 태어나도 우주 개발에 뛰어드는 과학자가 될 겁니다.” 5일 전화 인터뷰에서 들려온 그의 목소리는 아직도 들떠 있는 듯했다.
테이코엔지니어링은 직원 160명의 중소기업. 하지만 이 회사가 개발한 열조절 장치는 미국·유럽 등 주요 우주개발국의 장비에 90% 가까이 채택되고 있다.
“기술로 어려움을 극복해냈어요. 다른 회사가 1년 수명의 부품을 만들 때, 30년 수명을 목표로 부품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그의 기술력은 실제로 86년부터 30년 가까이 NASA(미 항공우주국)의 인정을 받고 있다. 당시 NASA는 챌린저호 폭발사고로 우주계획 중단 위기에 처했지만, 정 사장이 개발한 ‘우주왕복선 균열방지용 특수 열가열 장치’를 채용, 디스커버리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하며 난관을 벗어났다.
물론 이 수준에 오르기 위해 정 사장이 쏟은 노력은 상상하기 힘든 것이었다. 황해도 재령 출신인 그는 1·4후퇴 때(당시 5살) 어머니, 형, 누나와 함께 월남했다. 사업을 하던 아버지는 이전에 행방불명됐다. 서울 영등포에 자리를 잡은 이들은 힘겨운 생활을 이어갔지만, 공부는 놓지 않았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일기장에 “세계적인 과학자가 되겠다”는 구절을 적어놓고 들춰보곤 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사회 분위기는 나라를 살리려면 과학기술밖에 없다는 공감대가 있었다”며 “어린 마음이었지만 큰 물에서 활약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고 돌이켰다.
서울 사대부고를 졸업한 그는 서울대 금속공학과, 대한전선을 거쳐 결국 ‘큰 물에서 활약하기 위해’ 77년 부인, 딸 둘과 함께 미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새벽 4시 기상, 밤 12시 취침하는 생활을 계속하며 연구에 매달린 끝에 이 같은 성공을 이뤄냈다.
그는 “우주 개발이 실생활과 무관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지금의 기계·의료공학 기술은 대부분 우주 공학에 빚을 지고 있다”며 “우주 공학을 연구한 것은 너무나도 훌륭했던 결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화성 탐사에 머무르지 않고 목성 등 다른 행성 탐사의 기반으로 이번 스피릿의 성공을 활용할 것”이라며 “한국의 젊은이들도 더 큰 꿈을 갖고 분발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의 큰딸 줄리 정(한국 이름 지윤)은 국무부에서 외교관으로, 작은딸 코니 정(한국 이름 윤경)은 샌프란시스코 방송국의 프로듀서로 활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