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Lille)시(市)의 미테랑 광장에 있는 꽃조각 ‘샹그리라의 튤립’이다. 일본 작가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으로 ‘산업도시’ 대신 ‘꽃의 도시’란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릴=강경희특파원)

프랑스 북부 릴(Lille)시. 플랑드르 역의 높은 천장은 조명과 필터 작업을 통해 분홍으로 붉게 물들었다. 비행기를 타고 오는 관광객들을 위해 릴 공항도 꽃모양 스티커로 장식됐다. 일본 작가 데키 야요이의 작품이다. 도심을 달리는 시내버스 차창에도, 지하철·버스를 이용하는 1일권 티켓에도 어김없이 축제 로고는 찍혀 있다.

‘2004 유럽 문화수도 릴’의 모습에 유럽인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이유는 그동안 공업도시로 유명했던 이곳이 화려한 문화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도 경이롭기 때문이다. 1985년부터 유럽연합이 선정하는 문화도시는 그리스 아테네를 시발로 그동안 19개가 있었지만, 이번 릴처럼 대도시가 완전히 환골탈태의 대변화를 보여준 예는 없었다.

먼저 시내 곳곳에 자리잡은 설치물들은 릴을 거대한 미술관으로 바꾸었다. 시내의 프랑수아 미테랑 광장에는 대형 튤립 조각이 빌딩과 묘한 조화를 이루며 서 있다. 어둠이 깔리면서 휘황한 조명으로 옷을 갈아 입는 이 명물 역시 야요이의 작품 ‘샹그리라의 튤립’이다. ‘릴 2004’ 행사의 일환으로 열린 전시회 ‘플라워 파워(Flower Power)’전과 연관 있는 작품이다.

‘릴 2004’ 행사는 연중 똑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게 아니다. 행사기간(2003년12월~2004년 11월)을 총 3기로 나눠 갈래를 짓는다. 언제 찾아와도 새로운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다. 1기(2003년12월~2004년3월)의 하이라이트가 바로 ‘플라워 파워’였다. 지난 22일 막을 내린 이 행사는 3곳 전시장에서 동시에 열렸다. 17세기 꽃 정물화 전시, 앤디 워홀의 ‘꽃’, 한국인 최정화의 움직이는 꽃 설치물 등이다. 실린더에 장미 한 송이를 꽂아놓고 ‘직접 민주주의를 위한 장미’라고 이름 붙인 요셉 보이스의 작품에도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이 기간에 미래의 자동차와 로봇, 미래의 영화를 주제로 한 행사도 동시에 열려 과거-현재-미래가 공존하고 있다.

2기(3~9월) 행사 중에는 가장 눈길을 끄는 루벤스전을 비롯해 섬유전, 아프리카 예술전, 비디오게임전, 중국 화가 자오 우키 전시회 등이 예정돼 있다. 3기(9~11월)에도 디자인전, 건축전 등이 눈에 띈다.

이번 ‘릴 2004’는 3년 전 이미 조직위가 만들어져 행사를 준비해왔다. 총예산은 7370만유로(약 1100억원)다. ‘플라워 파워’를 기획하는 데 참여하고 있는 김승덕씨는 “이번 행사가 방대한 규모이면서도 짜임새 있고 깊이 있게 진행되는 비결은 철저하게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외부 영입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직위의 올리비에르 셀라리씨는 “이번 ‘릴2004’는 릴시(市) 단독으로 준비한 게 아니라, 릴 인근 지방과 벨기에 일부 도시들까지 가세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면서 “이런 협업 체제는 유럽 문화수도들 중 처음 시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릴(프랑스)=강경희특파원 khkang@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