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추진중인 ‘서울의 중국어 신표기 소위원회’ 위원장인 전인초 연세대 중문과 교수는 4일 “현재 서울의 중국어 표기인 ‘한성(漢城)’은 발음이 서울과 전혀 달라 문제가 많다”며 “중국어 발음이 ‘서울’에 가장 가깝고 의미도 좋은 한자어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은 조선시대에 한성, 일제 시대에 경성(京城)으로 불리다 지난 1946년 이후 ‘서울’을 정식 명칭으로 써왔다. 서울은 수도를 뜻하는 순 우리말로 한자어 표기가 따로 없다. 이에 중국은 서울을 조선시대에 썼던 ‘한성’으로 표기해 왔다. 그러나 한성(漢城·han cheng)은 중국어 발음이 서울과 완전히 다르고 별개의 고유명사로 쓰이고 있기 때문에 양국 교류에 혼란을 야기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일례로 중국에서는 ‘서울대학교’를 ‘한성대학교’로 표기하는 탓에 서울대로 보내는 국제우편물이 한성대에 잘못 전달됐다가 반송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그밖에 한성과학고와 서울과학고, 한성기업과 서울기업 등 서울과 한성이 고유명사로 쓰이는 경우는 수 없이 많다. 전 위원장은 “중국과의 경제·사회·문화 등 전 분야에 걸친 교류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를 생각하면 서울을 한성으로 표기하는 방식은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위원장은 “서울의 중국어 표기를 고치는 데는 민족적 자존심 문제도 있다”며 “지난 1992년 한·중 수교 협상 조항에서 ‘북경(北京)에 대한민국 대표부를 두고 한성(漢城)에 중국 대표부를 둔다’는 문구를 봤을 때 부터 개선의 필요성을 느껴왔다”고 말했다.
지명에 쓰이는 ‘성(城)’은 ‘큰 읍내가 있는 도시’라는 뜻으로 주로 속국이나 변방국의 수도를 낮춰 부를 때 사용되기 때문이다. 전 위원장은 “사실 중국사람들 중에는 ‘한성을 그대로 쓰자, 수백년 동안 써오던 것인데 왜 바꿔서 혼돈을 야기하느냐’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다”며 “상징적이지만 한국이 중국으로 부터 자주적으로 독립해 나가는 걸 내심 못마땅해하는 마음도 있는 것 같다”고 추측했다.
이어서 그는 “중국이 먼저 고쳐줄리 없는 만큼 우리가 벌써 오래전에 나서서 바로잡아야 했는데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전 위원장은 이미 10여년 전쯤 몇몇 대학의 중국학 교수 4명과 함께 해외홍보처의 자문위원으로 위촉돼 서울의 중국어 표기 개선 작업을 한 적이 있다.
그는 “당시에 ‘으뜸가는 높은 언덕’이라는 뜻의 首塢爾(셔울)이 최종안으로 채택됐지만 국무회의에서 부결된 이후 논의가 사장되어 왔다”고 회고했다. 그러던 중 올 초 서울시는 언어·중국어 학자, 시 외국어표기 전문위원, 외교통상부 직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자문회의를 열어 ‘서울의 중국어 신표기 소위원회’를 구성, 전인초 교수를 위원장으로 위촉했다.
이후 전 위원장은 개인적으로도 한국에 조예가 있는 중국 내 대학 교수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의견을 묻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공모전도 제안했다고 한다. 이에 서울시는 지난 3일 부터 오는 15일까지 서울시 인터넷 홈페이지(seoul.go.kr)와 우편을 통해 ‘중국어 표기 개선안 공모’를 접수하고 있다.
전 위원장은 “공모를 통해서 여러 사람들의 지혜를 모아 가장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것을 기대한다”며 “중국을 설득하기 위해서라도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국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공모 결과를 발표하는 다음 달 6일 이후 전문 학자들끼리 1박2일로 집중 논의에 들어갈 예정”이라며 “최종안들 중에서 다시 여론을 수렴하는 절차를 거쳐 빠르면 상반기 중으로 서울의 신표기안을 결정한다는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측은 “신표기안이 채택되면 중국 당국이 공식적으로 사용하도록 북경시를 통해 교섭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