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에 방영되는 사극들에서 가장 자주 듣는 말이 임금 앞에 엎드려 “통촉하옵소서” 하는 것이다. ‘아랫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살펴주옵소서’라는 완곡한 반대의사 표시다. 정착사회인지라 내 소견을 극소화하는 것이 현명한 우리나라에서 통촉을 바라는 것은 눈밖에 나는 소외 언행이다. 더욱이 임금 면전에서 절체절명인 하명을 반대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을 속칭 ‘통촉대신’이라 했다.
태종11년 임금은 윤락촌인 창기(娼妓)를 폐하려 한다 하고 대신들의 의견을 물었다. 세상이 공감하는 명분 있는 악이요, 그 더욱 임금의 뜻이 그러하다는데 반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모든 대신이 묻기도 전에 임금의 뜻에 찬동했으나 유독 하륜(河崙)만이 통촉대신이 된 것이다. 세종 때 현감부인인 감동(甘同)이 왕자를 비롯, 영의정 등 38명의 사대부들과 사통하는 일대 음풍이 불었을 때 조정에서는 창기를 없애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임금이 누구보다 맹렬하게 폐지에 앞장설 것으로 믿었던 깐깐한 허조(許稠) 대감에게 물었을 때 임금은 기대에 배신을 느꼈다. 남녀관계는 인간 본성이라 법으로 금할 수 없는 일이요, 엄하게 법으로 다스리면 숨어서 여염의 집을 침범하게 될 것이 자명한 일이니 그 누를 감안해야 한다고 아뢴 것이다. 현명했던 태종과 세종은 “노”라고 말한 이 두 통촉대신의 말을 좇아 역사에 현군(賢君) 현신(賢臣)으로 회자되고 있다. 2년 전 매춘 소탕으로 떴던 한 여성경찰서장이 특정 지역 윤락여성 150명을 단속해 이주시켰는데, 뒤를 추적했더니 143명이 다른 곳에서 매춘을 계속하고 있음을 확인 했다 한다. 풍선 줄을 자르면 떠돌다가 딴 곳에 내릴 뿐이라는 윤락 단속의 ‘풍선효과’를 이미 수백년 전에 통촉대신들은 알고 있었다.
정부는 윤락촌을 단계적으로 폐쇄하기로 하고 9월부터 포주의 수입을 몰수하기로 했다. 동서고금 시도해보지 않은 나라가 없지만 실천된 전례가 없는 이 풍선효과를 논의하면서 통촉대신 한 분이라도 있었던가 알고 싶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