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들이 6일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는 대신, 구호를 외치며 MP3폰(MP3파일 재생 기능이 들어있는 휴대전화기) 판매에 대해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엄정화, 강타, 동방신기, NRG, 코요테, 설운도, 태진아씨 등 인기가수 20여명과 음반산업협회 등 음반제작관계자 30여명은 6일 오후 1시30분부터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LG규탄 집회’를 갖고 LG텔레콤의 MP3폰 판매 중단을 촉구했다.
특히 20여명의 가수들은 이날 하나같이 비장한 표정으로 현장에 나타났다. 가수들이 속속 도착할 때마다 행사장에 미리 와서 이들을 기다리고 있던 100여명의 소녀팬들이 탄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이들은 평소와는 달리 팬들에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입술을 지그시 깨물은 채 묵묵 부답이었다. 가수들은 행사장 단상 밑 바닥에 일렬로 자리를 잡은 뒤 “최근 LG텔레콤의 MP3폰 판매 조치가 벼랑 끝에 몰린 국내 음반 산업을 고사(枯死·말라 죽음)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가수 출신 MC인 임백천씨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행사에서 가수이자 음반 제작자인 권인하씨는 맨 먼저 단상에 나와 “LG텔레콤측이, MP3폰 출시 문제와 관련된 음반업계-단말기 제조업체간의 협의를 무시하고 지난 3월 기습적으로 MP3폰을 시중에 판매했다”고 비난하고, “MP3폰 출시로 음반업계는 소리바다 때보다 10배 이상의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진 결의문 낭독에는 가수 엄정화씨와 태진아씨가 나섰다. 자신의 히트곡 ‘노란 손수건’을 연상케하는 노란 정장 차림의 태진아씨와, 짙은 색 옷을 입은 엄정화씨는 굳은 표정으로 “LG가 사실상 불법 MP3유통을 조장하고 있다”며 “당장 판매를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이어 20여명의 인기 가수들이 한꺼번에 단상에 올라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가수 김흥국씨의 선창을 시작으로 “한국 음악 죽이는 3류 LG 자폭하라” “앞에서 정도경영, 뒤에서 불법조장” 등의 구호를 2~3분간 외쳤다.
행사 말미에는 한국음원제작자협회 등 음반제작관계자 5명이 항의의 표시로 현장에서 삭발식을 갖고 머리카락을 전부 밀어 버렸다.
이들은 40여분 동안 집회를 가진 뒤 해산했다.
이날 현장에는 LG 직원 30여명이 LG로고가 새겨진 베이지색 점퍼를 입고 나와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성토의 대상이 된 LG텔레콤 고위 관계자도 여러 명 현장에 나와 이 광경을 지켜봤다.
한 LG관계자는 "불법이라고 하는데, MP3폰 공급은 불법이 아니다"라며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행사장에는 가수 등이 타고 온 에쿠우스 등 검은 색 고급 승용차 20여대가 늘어서 있었고, 머리를 짧게 깎은 사설 경호원 30여명과 경찰 관계자들까지 몰려 나와, 북새통을 이뤘다.
이날 행사는 최근 MP3폰을 둘러싼 LG텔레콤과 음반산업 종사자들간 갈등의 연장선상에서 이어진 것이다. 음반제작사측은 “컴퓨터에 이어 휴대전화에서마저, 불법 유통되는 MP3파일이 자유롭게 재생된다면 음반산업은 고사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논쟁이 불거지자 삼성전자 등 대부분의 휴대전화기 회사들은 얼마 전 음원관련업체들과 협의를 갖고, MP3폰 제조 때, 이용자가 PC에 저장되있던 MP3파일을 휴대전화기로 옮겨오더라도 그 MP3파일이 휴대전화기에서는 72시간 이상은 재생되지 않도록 제조한다는데 동의했다.
하지만 LG텔레콤은 “(MP3파일이 별다른 제약없이 유통되는) 휴대용 MP3플레이어와의 형평성 문제가 있고, 소비자 권리 역시 보호돼야 한다”며 단독으로 MP3폰 시판을 강행하고 있는 상태다.
이와 관련, 소비자들의 반응은 여전히 엇갈리고 있는 상태다. 이날 행사를 관람한 100여명의 초중학생 소녀팬들 역시 생각이 엇갈렸다. 집회를 구경나온 김희연(중2·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양은 “노력의 대가를 보장하라는 가수들의 주장에 충분히 공감한다”고 말했다. 반면, 중학교 3학년인 또 다른 여학생은 “컴퓨터에서도 그냥 MP3음악을 듣는데 휴대폰에서는 왜 안 된다는 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음반업계는 내달 5일쯤 잠실주경기장에서도 또다시 궐기대회를 가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