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현지 교민들은 김선일씨 납치사건 소식이 전해지자 한국인도 살해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에 동요하고 있다.

지난 1983년부터 이라크에서 무역업을 하고 있는 세바비젼 박상화 부사장은 “20년 넘게 바그다드에 있었지만, 요즘처럼 사회 분위기가 어수선한 적이 없었다”며 “나도 납치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열흘 전부터는 집에서 나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박 부사장은 “집과 사무실도 불안해 팔레스타인 호텔 등으로 대피하는 교민들도 있다”고 전했다.

이종석 NSC 사무차장(가운데)이 21일 급히 열린 김선일씨 피랍사건 당정 간담회에서 이라크 상황을 보고하고 있다.

현재 파병군인을 제외하고 이라크에 남아 있는 한국인은 대사관 직원, 상사 주재원, 언론사 특파원 등이다. 지난달만 하더라도 선교사 등이 상당수 남아 있었지만, 미국인 참수 등으로 외국인들의 신변이 불안해지자 대부분 요르단 등 주변 국가로 옮겼다.

여전히 현지에서 활동 중인 군납 업체, 경호 업체, 일부 NGO 관련 단체 관계자들도 최근 외국인 납치와 폭탄 테러가 잇따르자 외부 활동을 아예 포기했다고 한다.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권혁관 이라크 지부장은 “이라크인 친구들과 아랍어로 능숙하게 대화하던 김씨가 현지인에게 인질로 잡혔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며 “한국군 파병 소식이 알려지면서 노골적으로 한국인에 대한 반감을 표시하는 이라크인이 늘어 불안감이 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라크 현지에서 재건지원 업무를 맡고 있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 조형호 부소장은 “차를 타고 시내를 이동할 때 창문을 신문 등으로 가려야 할 정도”라며 “먹을 음식이 떨어지면 현지인을 시켜 시장을 보게 한다”고 말했다.

이라크 현지 경호업체인 ㈜STW 김대환 지사장은 “부득이하게 외출을 해야 할 경우에는 현지인 3~4명과 함께 나간다”며 “그것도 부족해 방탄복을 입고, AK 소총과 38구경 권총 등으로 무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매주 금요일 가나무역 사무실에서 김선일씨를 만나 식사를 하면서 안전을 당부했었다”며 “TV에서 김씨가 울부짖는 장면을 보고 한국인 직원 2명과 함께 발만 동동 굴렀다”고 말했다.

이라크 현지에 진출한 대기업 등 주요 업체들의 경우 주재원을 대부분 철수시킨 상태다. LG전자는 지난 3월 국내 전자업계로는 처음으로 이라크 바드다드에 지사를 설립한 후 차장급 주재원 1명을 파견했지만, 이라크내 치안상황이 어려워지자 지난 5월 요르단 암만으로 귀환시켰다.

또 작년 11월 이라크 고속도로에서 직원 2명이 과격단체에 의해 살해된 오무전기는 지난 3월 말 이라크 바그다드 송전선 복구공사를 1차로 마무리하고 직원들을 모두 철수시켰다. 오무전기 황장수 부사장은 “이라크 2차 공사 수주를 위해 사업을 진행 중인데, 이번 사건으로 당분간 출장이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4월 바그다드 인근에서 현지 무장단체에 억류된 후 풀려난 대한예수교 장로회 허민영 목사는 “인질로 잡히는 순간부터 납치범의 총같은 무기를 보고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며 “하지만 침착하게 대화를 나누면서 친근감을 심어주면 상황이 호전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