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공화국 출범과 함께 근대화의 비전을 담고 새롭게 건설된 앙카라는 수도가 된 지 80년이 지났건만 절반의 성공밖에 거두지 못했다. 앙카라는 급속한 도시화로 인해 난개발의 몸살을 앓고 있다.
아직도 도시 곳곳이 공사 중인 미완(未完)의 도시다. 1923년 수도가 된 앙카라는 터키 최초의 계획도시였다. 그 덕에 1600여년 역사를 지닌 옛 수도 이스탄불과 비교하면 도심의 주요 도로가 널찍널찍하고 정돈돼 있다.
학교, 병원 등도 다른 터키 도시들에 비해 잘 갖춰진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심 일부를 제외하고는 계획도시가 갖는 단정한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 앙카라 달동네… 천도 80년 앙카라는 아직도 '未完의 도시'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서는 동안 좌우로 펼쳐지는 풍경은 앙카라의 난개발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었다. 도시 변두리의 구릉지마다 빨간 지붕의 무허가 주택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터키의 달동네를 밤(게제)에 지었다(콘두)는 뜻의 ‘게제콘두’라고 부른다. 터키에서는 1950년대 중반부터 이농(離農)현상이 시작됐다. 무작정 도시로 온 이농자들이 시유지나 국유지에 경찰의 눈을 피해 밤마다 몰래 집을 지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잠자리를 준비하는 사람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이슬람 정신에다, 정치인들이 이들을 표밭으로 의식하고 선심정책을 편 것도 게제콘두의 확산을 부채질했다. 게제콘두는 터키 대도시마다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수도 앙카라의 경우 네 번이나 도시계획을 새로 짜야 할 만큼 난립해왔다.
도시가 급팽창하고 신 도심지가 조성되면서 1920년대 당시 터키의 국부(國父)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정착했던 앙카라의 구 도심지 울루스 일대도 게제콘두들로 뒤덮였다. 한국 교민 오진혁씨는 “울루스 일부 동네는 낮에도 남자들 혼자 돌아다니기를 꺼릴 정도로 치안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 부족한 인프라… 인구 팽창 예측실패 도시계획만 네차례
앙카라는 터키 최초로 도시 계획을 도입하는 등 체계적인 도시 발전을 시도했지만 계획은 언제나 빗나갔다.
1923년 인구 3만명의 작은 마을이었던 앙카라가 1927년에 7만5000명으로 늘었다. 1928년 앙카라의 도시 계획을 맡은 독일인 헤르만 얀센은 향후 30년간 앙카라 인구가 30만명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하에 도시 계획을 짰다.
하지만 1955년 앙카라 인구는 이미 45만명에 달했다. 결국 1950년대에 두 번째 도시계획안을 만들었다. 이 때는 2000년까지 앙카라 인구가 75만명이 될 것으로 보고 입안했다. 이 예상도 금방 빗나갔다.
결국 1960년대 말에 인구 360만명을 기준으로 한 계획안을 만들었고, 1980년대 들어 또다시 인구 500만명을 기준으로 한 ‘앙카라 2015’를 만드는 등 네 차례의 도시계획을 입안했다.
인구는 급속히 늘어나는데 도시 인프라나 환경조건은 이에 미치지 못하는 바람에 앙카라는 주택·물·전기 부족이며, 교통난·오염난 등 도시화의 문제점은 거의 모두 안고 있다.
강우량이 적은 앙카라는 여름이면 단전·단수 예고가 수시로 나오는 동네가 적지 않다. 게다가 분지 지대인 앙카라에서는 10~20년 전만 해도 숨쉬기 힘들 정도로 대기 오염이 심각했다. 유연탄을 난방 연료로 썼기 때문이다.
러시아에서 들여온 천연가스로 유연탄을 대체하면서 공기가 많이 깨끗해지긴 했어도, 아직 저소득층이 밀집한 동네는 유연탄을 사용한다. 인구 400만명의 대도시이지만, 지난 10년새 건설된 25㎞의 지하철이 아직 도시 일부 구간에서만 운행된다.
◆ 커지는 격차… 稅혜택등 유인책에도 기업들 "이스탄불 안 떠나"
앙카라는 400만 인구 중 공무원이 25만명쯤 된다. 가족들까지 포함하면 4명 중 1명꼴로 공무원 월급으로 사는 셈이다. 그 다음으로 학생, 상인이 많다. 터키 경제의 40% 이상을 좌우하는 이스탄불과는 여전히 커다란 격차가 존재한다는 걸 앙카라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느낄 수 있다.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 각국으로 향하는 구심점 역할을 하는 이스탄불의 아타튀르크 국제공항과는 달리, 앙카라 공항은 국제공항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민망할 만큼 작고 초라하다. 이스탄불에 살고 있는 직장여성 귈친 뷜빌카야(36)는 “이스탄불은 국제 도시, 앙카라는 터키 도시”라고 표현했다.
앙카라는 낙후된 중·동부 지역에 자리잡았다는 점에서 국토의 균형 발전 노력을 상징한다. 그렇지만 산업시설 대부분이 이스탄불을 포함한 서부 해안가에 치우쳐 있고 내륙에는 거의 없어 이스탄불 편중 현상을 줄였다고 보기도 힘들다.
KOT RA 이스탄불무역관의 김종섭 관장은 “터키 정부가 내륙에 투자하는 기업에는 세제 혜택 등을 주는 유인책을 쓰지만, 그것 때문에 이스탄불을 벗어나는 기업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무역·관광도시로서 천혜의 조건을 갖춘 이스탄불은 수도의 위치를 잃고도 1920년대 당시 인구 79만명에서 오늘날 1000만명이 넘는 거대도시로 커졌다. 유동인구까지 합할 경우 1400만~1500만명에 달한다. 인구 5분의 1을 차지하는 이스탄불이 전체 국민소득에 기여하는 비중은 40~50%에 이른다.
앙카라에서 자라나 이스탄불에 사는 직장인 쿠빌라이 곡체 클르치(26)는 “국내외 기업 본사가 몰려있는 경제도시여서 일자리를 찾아 이스탄불로 몰려드는 인구가 여전히 많다”고 말했다.
(앙카라·터키=강경희특파원 khkang@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