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후 6시(현지시각) 그리스 아테네 신태그마(Syntagma) 광장. 국회의사당과 정부청사가 모여 있고 호텔과 각종 회사가 밀집해 있는 이 곳에서 그리스 특유의 민속 의상을 차려 입은 위병 2명이 교대식을 거행하고 있었다.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은 신기한 볼거리에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감탄했다.

하지만 위병들이 지키고 있는 것은 정부나 국회가 아니다. 이 광장에는 그리스가 자유와 독립을 지키기 위해 치렀던 전쟁에서 전사한 병사들을 기리는 비석이 서 있다. 의장대 군인들은 이 무명 용사의 벽 앞에서 24시간 보초를 서고 있는 것이다.

무명 용사의 벽에는 고대 전사 한 명이 고요히 잠들어 있는 모습이 부조로 새겨져 있다. 이 조각 옆에는 “용감한 전사에게는 어디든 무덤이 될 수 있다”는 구절이 적혀 있다. 비석에는 그리스가 치렀던 전쟁 목록이 나열돼 있으며, 목록 가장 오른쪽에는 ‘한국(Kopea)’이라는 글자가 보였다. 그리스 젊은이 169명이 1950년 한국전쟁에 UN군으로 참전해 고귀한 피를 흘렸음을 나타내는 표시다.

과거 페르시아의 왕비는 그리스와의 전쟁에서 패한 뒤 “아테네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기에 막강한 페르시아 군을 무찌를 수 있었느냐”고 물었다. 이에 한 원로는 “그들은 노예도 신하도 아닌 자유인”이라고 답했다.

이 자유인들은 자신의 자유뿐만 아니라 우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도 소중한 목숨을 기꺼이 바쳤다. 그리고 그 피를 잊지 않고자 매일 아테네 시내 한복판에서 신성한 의식을 벌이고 있었다. 우리는 자유와 독립을 지키기 위해 쓰러져간 선인(先人)들을 기억하기 위해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