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익 논설위원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했을 때, 고구려사에 대한 저우언라이(周恩來)와 후진타오(胡錦濤)의 입장 차이만큼 적절한 사례도 드물다. 역사는 객관적 사실로서 존재하지만 그에 대한 해석은 보는 이가 처한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E H 카(Carr)가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말한 요점이다.

중국 혁명 1세대로서, 외교를 총괄하는 내각 총리를 역임했던 저우언라이는 1963년 중국을 방문한 북한 조선과학원 대표단을 만나 “중국 역사학자들이 대국주의와 쇼비니즘(국수주의)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두만강 압록강 서쪽은 역사 이래 중국 땅이었다는 것은 황당한 얘기이며 역사학자의 붓끝에서 나온 오류”라고 못박았다.

그러나 후진타오 현 중국 국가주석은 달랐다. 그는 지난 2000년, 고구려를 중국 소수민족 정권으로 규정하는 대표적 학자인 쑨진지(孫進己)의 연구를 “매우 중시하고 지지했다.” 나아가 중국 사회과학원에 지시해 동북 변방 역사 및 현재의 상황과 관련된 일련의 연구 프로젝트로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추진하게 했다.

지난 40년 동안 중국에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중국의 두 최고 지도자가 한국 고대사에 대해 이처럼 판이한 시각차를 갖게 됐던 것일까. 저우언라이가 발해와 고구려를 한국사로 인정했다는 사실에서 안도와 위안을 느끼기에 앞서, 이 점을 분명히 해야 동북공정의 정체에 접근할 수 있다.

그것은 이웃나라를 넘볼 여유가 없던 가난한 사회주의 국가로부터 비약적 경제성장을 통해 자신감을 회복케 한, 세계 최강대국 중 하나로의 부상이다.

동북공정에서 비롯된 중국의 일련의 고구려사 왜곡 과정 중 하이라이트는 중국이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한국의 정부 수립 이전 역사를 전부 삭제해 버린 사건이었다. 그때 많은 한국인들은 대국의 횡포와 오만함에 대한 분노에 앞서 절벽을 마주 대하는 것 같은 암담함을 느꼈을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우리의 역사 자체를 지워 버리려는 존재. 신판 중화주의의 부활은 그렇게 다가왔다. 그것은 우리가 잠시의 흥청거림 속에 망각했던 한민족 생존의 지정학적 조건, 근대 이전 한·중 관계의 악몽에 대해 새삼 일깨웠다.

중국이 공식적으로 한국을 독립국으로 인정한 것은 19세기 말 청일전쟁에서 패배한 후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려는 일본의 압력에 의해서였다. 종전 후 중국의 이홍장과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 사이에 맺어진 시모노세키 조약 제1조가 바로 “조선국이 완전무결한 자주독립국임을 승인한다”는 것이었다.

서양 열강의 공세 속에 나라는 만신창이가 되었어도 끝까지 종주국임을 내세우다가 마지막에 놓아버린 것이 바로 조선이었던 것이다.

한국은 광복 후 경제발전이 가져다준 자신감과 중국의 상대적 정체 속에서 명실상부하게 독립자주국으로서 중국을 대할 수 있었던 게 사실이다.

“고구려는 중국의 지방정권”이란 후진타오의 고구려 해석은 중국이 한국을 보는 시각 면에서 100년 전 이홍장 이전으로 돌아감을 의미한다. 힘을 갖춘 중국은 동아시아의 대변화를 앞두고 한국에 고분고분 무릎 꿇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 지금은 거꾸로 중국이 상승곡선이고 한국이 정체상태다. 이 나라 정치권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시선을 안으로만 향한 채 그나마 쌓아놓은 역사마저 깎아내리는 데만 열중하고 있다.

(김태익 논설위원 tiki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