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야구부 사상 첫 1승의 주인공 박진수 투수.

“스포트라이트가 저한테만 집중 되는 것 같아 쑥스럽습니다. 다 같이 이룬 건데…”

지난 1일 ‘만년 꼴찌팀’ 서울대 야구부가 팀 창단 28년 만에 감격적인 첫 승을 일궈냈다. 이날 서울대는 동대문야구장에서 열린 2004 전국대학야구 추계리그 B조 예선 리그에서 송원대를 2대 0으로 이겼다. 1977년 창단 이후 1무 199패 끝에 얻은 값진 1승. 이날의 감격 뒤엔 투수 박진수(체육교육학과 4)가 있었다. 그는 9이닝 동안 155개의 공을 던지며 4안타 8볼넷을 허용했지만 무실점으로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승리의 주역’인 그는 동시에 팀 역사상 최초의 완봉승 투수가 됐다.

다음날 2일. 서울대 체육관 야구장은 전 날의 기쁨이 채 가시지 않았는지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축하한다”며 찾아와 인사하는 여학생들도 있었고 “돈 주고 이긴 거 아니냐?”며 농을 던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모 방송사에서 촬영을 나오기도 했다. 연습시간인 오후 4시를 30분 넘겨 박진수 선수가 연습장에 도착했다. 한 방송사에 출연해 인터뷰를 하고 돌아오는 길. 연습 시간에 늦은 것이 팀원들에게 미안했는지 받아온 출연료로 음료수를 ‘쐈다’.

#“졸업하기 전엔 꼭 한번 이길 거였습니다”

“경기 끝나고 어머니께 전화했더니 ‘어떻게 이겼어?’ 하시면서 크게 놀라시는 거예요. 매번 졌으니까요. 졸업하기 전엔 꼭 한번 이길 거라고 말해 왔었죠.” 그는 부산에 계신 부모님이 가장 기뻐하셨다고 했다. “3개월 전에 왼쪽 쇄골이 부러져서 걱정을 많이 하셨거든요.” 그는 또 이번 우승을 누구보다 기뻐할 사람으로 팀의 주장인 박현우(체육교육학과 3) 씨의 아버지를 꼽았다. “선수들 밥도 사주시고 많이 챙겨주셨는데 작년에 폐암으로 돌아가셨어요. 반드시 한 번은 이기겠다는 약속을 지켰네요. 이번 리그 끝나고 산소 가서 인사 드릴 참입니다.”

이번 첫 승에 앞서 서울대는 지난달 26일 치룬 한일장신대와의 경기에서 4대 4로 창단 이후 첫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 때도 박 선수는 완투를 하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 때도 그랬지만, 어제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공 던지면서 기분이 계속 이상했습니다. 이러다 이기는 거 아닌가 싶었죠. 또 한편으론 내 실수로 지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만감이 교차하는 사이, 9회 말 2사 주자 2루에서 송원대 마지막 타자의 타구가 날아가고 좌익수 용민(체육교육학과 4)이 타구를 잡는 순간, 학교 야구부의 역사는 새로 쓰여졌다. “지금도 기분이 묘하다”는 박 선수는 “언론에서 관심 많이 가져주셔서 정신이 없는데 이젠 추스려야죠”라며 4일 토요일 시합을 준비했다.

1일 동대문구장에서 열린 2004전국대학야구추계리그 B조 예선리그 송원대와의 경기에서 창단 28년만에 첫 승을 거둔 서울대 야구부가 환호하고 있다.

15명의 순수 아마추어 학생들로 구성된 서울대 야구부는 그간 콜드게임 패도 면하기 어려운 최약체 팀으로 한때 해체설이 나돌기도 했다. 0대 36대으로 패한 적도 있다고 한다.

박 선수도 2001년 팀에 들어와 경희대와 가진 첫 시합 첫 등판에서 15점을 내 주면서 콜드게임 패를 당했다. 그러나 박 선수는 서울대 야구부가 자신에겐 ‘이상적’이라고 한다. “도전할 수 있으니까요. 대학 4년 동안 제 생활의 활력소입니다.”

육상에서 축구, 핸드볼, 야구까지. 공부는 필수

1m78, 83kg에 오랫동안 운동으로 다져진 다부진 체격 덕에 팀원들 사이에서 그는 ‘소 새끼’라고 불린다. 된소리가 나는 별명을 후배들도 거침없이 부르지만 그는 별로 껄끄럽게 여기지 않고 그저 웃어 넘긴다.

박 선수에 뒤이은 차세대 에이스로 박 선수와 학교 순환도로를 뛰던 최우석(체육교육학과 3) 씨는 “형은 타고 났다”며 “모든 운동에 탁월하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박 선수는 100m를 11초 대에 돌파하고 직구 스피드도 최대 130km로 아마추어 치곤 빠르다. 언론은 낙차 큰 그의 커브 실력을 칭찬했다.

박진수 선수가 그에 이어 차세대 에이스로 부상하고 있는 최우석(왼쪽) 선수와 야구장으로 향하고 있다.

타고난 운동 감각으로 초등학교 때 육상부에서 활약하기도 했고, 고교시절엔 친구들과 축구부를 만들었다. “어렸을 때 테니스 공으로 동네 야구를 했다”는 그는 한 때 야구 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공부하라는 부모님 뜻에 따랐다고 한다. 그러나 꿈과 끼, 그리고 깡이 그리 쉽게 접히진 않는 법. 박 선수는 서울대에 오기 전 1999년 건국대에 입학, 야구부에서 투수로 뛰면서 본격적으로 야구에 빠졌다고 한다. 그러나 공부에 뜻도 강해 삼수끝에 서울대에 다시 들어갔다.

그는 현재 서울대 야구부 외에 핸드볼부도 하고 있다. 핸드볼은 그의 전공이기도 하다. 작년엔 핸드볼부 주장을 맡기도 했다. 둘 다 어깨를 많이 쓰는 운동이고, 핸드볼 경기가 지방에라도 있는 날이면 서울에서 오가느라 힘이 들기도 하다. “핸드볼은 어느 정도 책임감 같은 게 있는데 야구는 ‘그냥’ 좋아요, 그 어떤 것보다도.” 그렇다고 운동에만 매달리는 건 아니다. “운동과 상관없이 공부는 필수”라는 그는 학교 성적 우수 장학금도 놓치지 않고 있다.

학과 자체 수업만으로도 체력 소모가 많지만 따로 챙겨 먹는 보양식은 없다. 4년째 먹는 기숙사 밥, 그리고 김밥과 라면이 객지 생활하는 24살 청년에겐 성찬인 듯 싶다. “어머니가 해 주시는 김치찌개가 제일 맛있다”는 그는 “바빠서 한동안 못 내려 갔어요”라며 아쉬워했다.

#“배워서 남 줘야지요!”

야구 연습이 끝나고 땅거미가 질 무렵, 그는 노량진으로 향했다. 다가오는 12월에 있을 교사 임용고시를 준비하기 위해 1주일에 두 번 임용고시 학원에 다니고 있다. 운동할 때 끼는 렌즈를 빼고 은테 안경을 쓰면서 그는 체육 선생님이 꿈이라고 했다. “지난 5월에 교생 실습 나갔는데 아이들이랑 너무 재미 있었다”며 웃는 그는 “기존의 체육 선생님에 대한 일부 부정적인 이미지를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난 학기부터 서울대에서 운영하는 특수체육 프로그램에서 장애인들을 위해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학군단(ROTC)훈련을 마치고 입대해 복무한뒤 2년뒤 제대하면 대학원에 진학해 특수체육을 공부하고 싶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제가 좋아하는 운동을 하면서 사람들을 도울 수 있었으면 금상첨화죠.”

오후 6시 30분, 학원 근처 편의점에서 바나나 우유와 삼각김밥 2개로 저녁을 해치운 그는 “배워서 남 줘야지요!”라며 학원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