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희 사장


"팀이 해체될 정도로 위기였어요. 전화위복 하려고 지난 3년간 칼 갈고 내놓은 거죠."
지난 2001년 12월. 국내 게임개발회사인 소프트맥스(www.softmax.co.kr)가 PC용 게임 '마그나 카르타'를 출시했을 때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소프트맥스의 대표작이자 국내 PC게임 최고의 히트작인 '창세기전'의 아성을 이을 것이란 기대와 달리 게임에서 각종 버그가 발견되면서 전량을 리콜시켜야 했던 것.

그러나 소프트맥스는 3년만에 PC게임으로 사실상 실패한 ‘마그나카르타’를 소니의 비디오 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PS)2 타이틀로 부활시켜 지난 11일 일본에서 출시, 각종 차트에서 판매량 1위를 기록하며 ‘게임도 한류’란 새로운 공식을 쓰고 있다. 국산 게임이 일본에서 판매 1위를 차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

다음달 1일 국내 출시에 앞서 일본에서 먼저 ‘마카’ 돌풍을 일으킨 소프트맥스 정영희(39) 사장은 17일 “PC 게임 보다 훨씬 까다로운 PS2를 플랫폼으로 선택한 데는 버그없이 완성도 높은 게임을 출시해 과거 리콜의 오명을 벗고 다시 부활하겠다는 의지가 깔려있었다”고 털어놨다.

정 사장은 “국내 최초로 PS2 게임을 개발하는 것은 힘든 싸움이었다”며 “게임기의 규격에 맞춰야 하는 개발 여건이 훨씬 어려운 데다 일본측 파트너와의 커뮤니케이션도 쉽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하지만 PS2 게임은 일본 시장의 특성상 개발과 검수, 마케팅과 유통 과정이 정형화되어 있어 작품의 완성도가 뛰어나다”며 “특히 이번 마그나 카르타는 일본의 검수 전문회사의 사전 검수와 소니의 자체 검수까지 무려 4개월에 걸친 이중 검수를 통과했다”고 말했다.

PS2 타이틀 '마르나 카르타'캐릭터

그 결과 마그나카르타는 일본 최고 권위의 게임 전문 주간지 ‘패미츠(패 미통이란 이름으로 흔히 불림)’ 리뷰에서 ‘골드’ 레벨을 획득,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등 이미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패미츠는 리뷰에서 “긴장감 있는 전투와 박력 있는 스토리, 아름다운 연출과 매력적인 캐릭터가 우수하다”란 평을 내놓았다. 마그나카르타는 지난 11일 발매 이후 일본 PS2 공식사이트(www.jp.playstation.com)에서 18일 현재 1주일 연속 판매순위 1위를 지키고 있으며, 일본의 권위있는 대중문화 순위집계인 오리콘 차트에서도 비디오게임 부문 판매량 1위를 기록하고 있다.


◆ 일본 게임 수입 업체에서 일본 수출 1위까지
정영희 사장은 '마그나 카르타'에 대한 일본 내 폭발적인 반응에 대한 감회가 남다를 수 밖에 없다. 정 사장은 10년 전인 1993년에 소프트맥스를 창업했다. 당시 정사장의 나이는 29세. 지금도 함께 일하고 있는 조영기·전석환·최연규씨 등 5명과 함께 서울 강남의 한 건물 지하 사무실에 둥지를 틀었다. 그러나 처음 부터 국산 게임을 개발할 수 있는 여건은 아니었다고 한다.

정 사장은 “처음에는 운영비 마련을 위해 일본 게임을 수입한 뒤 한글화해서 팔아야 했다”며 “다행히 반응이 좋아서 얻은 수익으로 ‘창세기전’의 개발비로 투자했다”고 말했다. 2년 뒤인 1995년 12월에 PC용 게임 타이틀 ‘창세기전’을 출시하면서 정 사장은 “게임 개발로 회사가 운영되면 더 이상 일본 게임을 수입하지 않겠다”는 직원들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가수는 보아, 드라마는 겨울연가, 게임은 마그나카르타"
정영희 사장은 1996년 부터 일본시장 진출을 착실하게 준비해왔다. 비디오 게임이 세계 게임 시장의 70%, 일본 시장의 90% 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일본 진출을 세계 시장으로 가기 위한 교두보로 삼자는 전략이었다. 정 사장은 그러나 "지난 1996년에 소프트맥스가 '창세기전 2'의 PC버전을 일본에 처음 수출했을 때만 해도 현지에서는 일부러 '메이드 인 코리아'를 표기하지 말자는 말이 나왔을 정도로 한국 게임에 대한 인식은 열악했다"고 회상했다. 지난 2000년에 일본에 수출, 인기를 끌었던 PC 타이틀 '서풍의 광시곡'도 현지 회사를 통해 일본 정서에 맞게 각색, 변환해야 했다고 한다.

정 사장은 “최근에는 한류 덕분에 예전 같은 문화의 장벽은 많이 없어진 것 같다”며 “한 게임 전문지는 리뷰에서 ‘가수는 보아, 영화는 쉬리, 드라마는 겨울연가, 게임은 마그나 카르타라고 썼을 정도”라고 말했다.

실제로 마그나카르타 일본 배급을 맡은 반프레스토사는 일본 프로축구리그에서 활약하는 안정환 선수를 게임 광고 모델로 기용했고, 소니 뮤직은 일본 진출을 앞두고 마그나 카르타의 일본 버전 주제곡을 부른 가수 박화요비의 앨범을 게임 출시 1주일 뒤인 17일에 발매하는 등 한류의 시너지 효과를 노린 공동 프로모션이 펼쳐졌다.

◆회사 안팎의 '사람'이 10년간 회사를 이끈 힘의 원동력
지난 11월 6일 서울 코엑스 메가박스 상영관에서는 소프트맥스 임직원 전원과 3000여명의 소프트맥스 게임 팬들이 모인 가운데 창립 10주년 기념 행사가 열렸다. 서울 방배동의 한 지하 사무실에서 6명으로 시작한 소프트맥스는 올 초 이사한 서초동 한 빌딩의 3개 층에서 130여명으로 늘어난 직원들이 일하고 있다.

정 사장은 “특히 헤쳐모여식의 이합집산이 많은 게임 분야에서 10년 동안 꾸준히 게임을 내놓고 있는 회사가 있다는건 스스로도 자랑스러운 일”이라며 “특히 창립 멤버들이 그대로 있다는 게 가장 큰 재산”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지난 3년 동안 PC용 패키지 게임을 못내놨는데도 게임 캐릭터의 코스프레(복장)를 하고 행사에 참석해 축하해 주신 소프트맥스 게임 팬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소프트맥스 게임의 골수팬, 일명 ‘소맥 폐인’들은 인터넷 포털 다음과 네이버 등의 소프트맥스 팬카페에서 ‘잊지못할 명장면’, ‘명대사’ 등을 나누며 여느 드라마 팬 못지 않게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렇듯 ‘사람이 가장 큰 재산’인 소프트 맥스의 경영 이념도 다름아닌 ‘홍익인간’이다.

◆향후 10년 목표는 세계 톱 10에 꼽히는 컨텐츠 크리에이터
정 사장은 "이제 마그나 카르타 출시를 통해서 막 일본 시장에 제대로 진입한 것일 뿐"이라며 "우선은 마카의 시리즈를 꾸준히 내놓으면서 일본 내 밀리언셀러로 만들고, 나아가 소프트 맥스를 세계가 인정하는 브랜드 파워를 가진 회사로 키울 것"이란 포부를 밝혔다. 앞으로 정 사장은 마그나 카르타의 미국과 유럽 진출을 위해 더 바쁘게 뛸 예정이다.

정 사장은 “과거 10년 간 소프트맥스가 국내 게임 개발사로서 성장하는 데 PC 게임 ‘창세기전’ 시리즈가 기반이 됐다면, PS2 게임 ‘마그나 카르타’를 통해서는 세계 시장에 도전하면서 새로운 10년의 시작했다는 의의가 크다”며 “앞으로 10년 안에 세계 톱10에 꼽히는 컨텐츠 크리에이터가 되는 게 다음 목표”라고 말했다.